[사설] 딴 세상 얘기로 들리는 사우디 왕자의 전 재산 기부

[사설] 딴 세상 얘기로 들리는 사우디 왕자의 전 재산 기부

입력 2015-07-03 17:54
수정 2015-07-0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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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4위 부자인 알 왈리드 빈 탈랄 사우디아라비아 왕자가 전 재산인 36조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기부한 돈은 사우디의 여성 인권 향상, 재난구호, 질병퇴치 등에 쓰이게 된다. 알 왈리드 왕자는 사우디아라비아 살만 국왕의 조카로, 세계적 투자회사인 킹덤 홀딩스 회장이다. 그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의 기부 활동에 감명을 받아 전 재산 기부를 결정했다고 한다. 알 왈리드 왕자는 “자선사업은 30년 전부터 시작한 개인적 의무이자 내 이슬람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이라며 “사람은 전성기 때 극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잘 나갈 때’ 더 돈을 모으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그의 철학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사회 고위층 인사의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했다. 억만장자 사우디아라비아 왕자가 전 재산을 기부한다는 소식은 딴 세상 얘기로만 들린다. 우리나라 재벌이 알 왈리드 왕자처럼 개인 재산을 아낌없이 기부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어서다. 전 재산을 교육재단 등에 환원한 유한양행 창립자인 유일한 박사 같은 분도 있었지만 아주 오래전 과거의 일이다. 최근엔 자기 호주머니의 돈을 털어서 기부했다는 재벌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연말이면 대기업들이 앞다퉈 내는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회사 돈이다. 대기업 총수 개인 재산에서 나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재벌들 사이에서는 불법을 자행해서라도 아득바득 한 푼이라도 더 내주머니에 챙기고 어떤 식으로든 자식에게 부와 지위를 물려주겠다는 저급한 천민자본주의 행태만 만연돼 있다.

사우디 왕자의 뉴스가 전해진 날 검찰은 중견 패션업체인 신원그룹 박성철 회장이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숨겨 둔 채 허위로 개인파산과 개인회생을 신청해 270여억원의 빚을 면제받은 혐의로 수사에 나섰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땅콩 회항’ 사건을 일으키며 국민적 공분을 산 큰딸의 재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경영 복귀 가능성을 성급하게 언급해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부자가 천국에 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성경 말씀이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맞는 얘기인 듯하다. 재벌뿐만이 아니다. 여전히 한국인들은 기부에 인색한 게 사실이다. 부자든 평범한 시민이든 부의 사회 환원 정신을 배워야 한다. 기부문화가 확산돼야 부의 불평등도 개선되고 살맛 나는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2015-07-0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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