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의 예술, 감동을 조각하다

재료의 예술, 감동을 조각하다

입력 2015-06-16 00:10
수정 2015-06-16 02:57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다양한 재료의 재탄생, 조각 3人3色전

조각을 흔히 ‘재료의 예술’이라고 한다. 조각가는 돌, 나무, 흙, 섬유, 종이, 금속, 도자, 유리 등 다양한 소재를 깎고 붙이고 다듬어 입체 조형물을 만든다. 조각이란 재료가 품고 있는 고유의 에너지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각 작품은 2차원 평면에 물감으로 색채의 변화를 주면서 이미지를 표현한 회화작품과는 또 다른 예술적 감동을 안겨준다.

■ 남미의 나무와 사랑에 빠지다

김윤신 화업 60년 기념전

조각가 김윤신(80)은 아르헨티나로 여행을 떠났다가 남미의 태양과 바람을 맞고 자란 나무들에 매혹돼 그곳에 눌러앉았다. 32년 전의 일이다. 한국 여성 조각가 1세대로 화단에 명성을 떨치며 상명대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아르헨티나에 도착해 거대한 나무들을 보는 순간 사로잡혔다. 미대 교수와 예술가 중에서 선택해야 했지만 고민할 필요도 없이 예술가의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홍익대 조소과를 나와 프랑스 파리의 국립미술학교에서 조각과 석판화를 전공하고 1969년 귀국한 그는 70년대 중반 이후 다양한 실험 끝에 한국의 적송 등 나무를 소재로 작업했었다.

이미지 확대
남미 아르헨티나의 태양과 바람 아래서 작업한 작품들과 함께한 작가 김윤신.  김윤신미술관 제공
남미 아르헨티나의 태양과 바람 아래서 작업한 작품들과 함께한 작가 김윤신.
김윤신미술관 제공
항상 재료에 곤궁했던 그에게 아르헨티나에서 발견한 나무와 신기한 재료들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고 했다. 인디언들에게 거처와 식량, 가구 재료를 제공했던 붉은색 알가보로 나무를 비롯해 단단하고 벌레가 먹지 않는 팔로산토, 팜파스에서 자라는 갈렌 등 생명력 넘치는 나무들이 지천에 깔린 아르헨티나에서 그의 창작열은 활활 타올랐다. 한국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크고 단단한 나무들을 만나러 눈만 뜨면 신들린듯 작업장으로 달려갔다. 나무 외에도 멕시코의 오닉스, 브라질의 콰르츠 아주르 등 귀한 돌을 오브제로 사용해 생명과 영혼의 울림을 표현한 작품들로 현지에서 확고한 명성을 쌓은 그는 2008년엔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도 열었다. 전기톱으로 형태를 만들고 끌로 다듬어 석고사포로 문질러서 마무리하는 힘든 작업을 혼자서 하지만 그는 열정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미지 확대
아르헨티나의 나무로 만든 작품 ‘기원’.  김윤신미술관 제공
아르헨티나의 나무로 만든 작품 ‘기원’.
김윤신미술관 제공
서울 서초동 한원미술관에서 그의 화업 60년을 기념하는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영혼의 노래’ 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전시에는 나무, 돌, 준보석을 이용한 조각과 설치, 회화에 이르기까지 70여점의 작품을 통해 그의 예술세계를 조망한다. 전시는 7월 8일까지 이어진다.

■ 철 잔해물·백자… 재료의 한계를 뛰어넘다

성동훈 개인전

조각가 성동훈(48)은 이질적인 재료를 이용한 실험적인 작품과 유목민적 사유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 왔다. 2009년 이후 대만, 중국, 인도 등지에서 작업하며 외국 미술관의 프로젝트형 초대 개인전을 이어 온 그는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5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에서 더욱 다양한 재료에 대한 실험이 어우러져 재료적 한계를 뛰어넘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미지 확대
‘코뿔소의 가짜왕국’ 앞에서 선 작가 성동훈. 그는 철 슬래그, 청화백자, 전투기 잔해, 도자기 등 다양한 재료의 조합과 충돌을 통해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형상을 만들어 사회에 메시지를 전한다.  사비나미술관 제공
‘코뿔소의 가짜왕국’ 앞에서 선 작가 성동훈. 그는 철 슬래그, 청화백자, 전투기 잔해, 도자기 등 다양한 재료의 조합과 충돌을 통해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형상을 만들어 사회에 메시지를 전한다.
사비나미술관 제공
특히 용광로에서 나온 철 잔해물(슬래그)을 이용한 작품에서는 작가 성동훈의 철학과 확장된 작업방식, 앞으로의 작업 방향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지난해 대만의 주밍미술관 주관작가로 선정돼 동호철강의 예술재단에서 50t의 철 잔해물을 후원받았다. 철 슬래그라고 부르는 잔해물은 소재가 거칠고 단단해 절단하거나 용접 등의 가공이 어려워 조각재료로 사용할 수 없다고 여겨졌지만 그는 오랜 연구 끝에 최초로 조각의 재료로 사용했다. 이번 전시 작품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또 하나의 재료는 청화백자다. 그는 청화백자에 문양을 그려 넣고 세 번을 구워서 볼록한 단추 모양을 만들고 스테인리스 프레임에 접착했다.

이미지 확대
‘백색 왕국’
‘백색 왕국’
작가로서 정체성을 알린 작품 ‘돈키호테’처럼 그는 초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통해 현재를 비판하고 풍자해 왔다. ‘가짜왕국’이라는 타이틀을 단 이번 전시회에서 그는 모순과 위장이 난무하는 상황을 풍자한다. 코뿔소에 사람이 올라탄 모양을 한 작품 ‘코뿔소의 가짜왕국’은 재료와 형상이 생물과 무생물을 넘나든다. 사람의 몸통은 추락한 비행기 잔해로 만들어졌고, 머리는 구름형상을 하고 반짝이는 구슬을 달았다. 그가 타고 앉은 코뿔소의 몸통은 용광로의 철로 만들었고 코뿔소의 머리와 사람의 심장은 청화백자로 이루어진 형태다. 가슴 한가운데에는 백자를 심었다. 그런가 하면 오른손은 개미, 왼손은 황소 모양의 철 조각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철 슬래그의 원초적인 에너지, 고도로 정갈하고 아날로그적인 청화백자, 인공적이고 모조를 상징하는 구슬, 과학의 결정체이지만 현실에서 생명을 다한 비행기 잔해들을 한데 끌어들여 역설적인 가짜 왕국을 그려봤다”고 설명했다. 상반된 물성의 혼합은 작품에 강한 에너지를 부여한다.

작품 ‘백색 왕국’은 스테인리스로 사슴 모양의 틀을 만들고 청화백자를 붙였다. 세상에 대한 관조를 나타내면서 이질적인 재료의 조합을 통해 전통과 현재, 현실과 비현실, 진실과 사실이 혼재된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을 표현한다. 전시에는 형식과 재료, 관념에서 고정틀을 깨는 작품들 17점과 25년간의 작업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영상자료, 작품모형, 작품집, 오브제 등 아카이브도 함께 공개한다. 7월 12일까지.

■ 고목에서 나의 분신을 찾아내다

송진화 개인전

여인인지 소녀인지 모르게 짧게 깎은 머리에 동글동글한 얼굴, 섬세한 손과 손끝, 발가락 끝까지 힘을 준 다리를 구부리고 앉아서 우는지 웃는지 분간하기 힘든 표정으로 말한다(작품 ‘얘기해 봐’). 흰 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고개를 약간 삐딱하게 세우고 도도한 표정으로 서 있다( 작품 ‘삐뚤어질테다!’)

자신을 꼭 빼닮은 작품 ‘그리운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한’과 함께한 송진화 작가.  아트사이드갤러리 제공
자신을 꼭 빼닮은 작품 ‘그리운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한’과 함께한 송진화 작가.
아트사이드갤러리 제공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선보이고 있는 조각가 송진화(53)의 나무조각들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서 자꾸 들여다 보게 된다.

귀엽기도 하지만 처연하기도 하고, 아무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들 하나하나가 나무 둥치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하고, 따뜻한 온기마저 느껴진다.

벚나무로 만든 작품 ‘얘기해 봐’.  아트사이드갤러리 제공
벚나무로 만든 작품 ‘얘기해 봐’.
아트사이드갤러리 제공
작가는 “나무를 보면 자연스럽게 작품이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나무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옹이, 트임, 벌레먹은 흔적까지 그대로 살려서 작품을 한다”고 말했다. 섬세한 표현을 하기 위해 그는 주로 톱과 끌을 사용한다. 미대 회화과를 나와 입시학원을 하다가 마흔 즈음에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끄적끄적 그림을 그리다가 강원도에 나무를 많이 쌓아놓고 있는 지인의 도움으로 우연히 나무조각을 시작했다.

“그림보다는 몸을 써서 하는 조각 작업이 더 적성에 맞았다”는 그는 자기를 꼭 빼닮은 것 같은 여인의 형상들에 자기의 마음을 담았다.

작가는 “나는 참 상처를 잘 받는 사람인데 그동안 너무 강한 척하면서 살아온 것 같았다. 이제는 좀 더 내 참모습을 찾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전시회의 제목을 ‘너에게로 가는 길’이라고 붙였다”고 말했다. 7월 8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2015-06-16 21면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