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식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부교수
하지만 전직 대통령 중 현행 헌법에 의해 5년 임기로 취임한 6명의 대통령과 직전 헌법 규정으로 7년 재임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모두 헌정 중단 등의 사유로 임기 도중에 물러났다. 이처럼 민주공화정의 대한민국은 70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현대사 중 40년의 격랑을 거치고 나서 비로소 국가의 기본법 질서를 확립하게 됐다. 그래도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룬 대표적 국가로 인정받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유신시대(제4공화국)의 8호 헌법과 제5공화국의 9호 헌법하에서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한 2500여명의 통일주체국민회의와 5200여명의 대통령선거인단에서 무기명 투표로 선출됐다. 당시 헌법은 대통령과 정부를 국회보다 먼저 규정하면서 간선 대통령에게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적 효력을 갖는 긴급조치와 비상조치 발령 권한까지 부여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은 당 총재로서 여당 국회의원을 사실상 지명할 수 있어 국가 영도자의 지위에 걸맞은 실질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더욱이 그때는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정보의 습득·유통 과정에도 상당한 통제를 가할 수 있어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1987년 민주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 도입과 함께 제정된 현행 제6공화국 헌법은 한때 영도적 대통령에게 귀속됐던 국회 해산이나 비상명령과 같은 권한을 폐지해 민주 헌법으로 정상화하고, 국회를 정부 앞에 규정함으로써 7호 헌법 이전의 위상을 회복했다. 또 대통령은 여당 총재의 지위마저 내려놓고 권력기관을 정치에 활용하는 등과 같은 사실행위도 버렸다. 그간 변화된 국민 의식의 선진화, 정보사회의 진전, 지속적 경제발전 등의 요인이 함께 조화를 이룬 결과다. 이렇게 법치행정의 원리가 지배되는 민주적 대통령제가 정착된 것은 역대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받들어 헌법 제69조에 따라 취임 선서한 대로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이란 직책은 헌법을 수호하는 기본 토대에서 국가 발전 과정에 거쳐야 할 시대적 과제를 성실히 수행할 사람에게 부여된 소명이었다.
이제 대통령이 국가 영도자는 고사하고 정부 수반의 지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헌법 제78조의 ‘공무원 임면권’뿐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의 이 인사권은 국회가 견제할 것이 아니라 도와야 할 대상이 됐다. 하지만 국회는 최근 ‘의원 공화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입법권을 통해 정부를 계속 위축시키고 있다.
우리 국민은 수십년간의 경험을 통해 대한민국 대통령은 더이상 국가를 영도할 권능이나 의지가 없음을 확인했다. 따라서 국회는 대통령의 유일한 통치수단인 인사권을 위헌적인 인사청문회 ‘절차’를 만들어 임명 전부터 견제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굳이 제한하고 싶으면 그간 청문회에서 지적한 내용들을 간추려 국무위원 등의 임명결격 요건을 규정하는 법률을 만드는 것이 올바른 입법권 행사 방법이다. 만약 대통령이 그 기준에 따라 임명한 고위 공직자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잘못이 있을 때 해임건의나 탄핵소추 등으로 정치적·법적 책임을 물어도 얼마든지 견제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 헌법이 규정한 3권 분립의 기본 정신이고 원칙이다.
2015-04-0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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