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자원개발 실태] 혈세 낭비 오명에 해외자원 예산 반토막… 신규 개발 ‘올스톱’

[해외 자원개발 실태] 혈세 낭비 오명에 해외자원 예산 반토막… 신규 개발 ‘올스톱’

입력 2014-12-05 00:00
수정 2014-12-05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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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자원개발 공기업의 사업 현황과 전문가들 조언

내년도 신규 해외 자원개발이 올스톱 위기에 놓였다. 혈세 낭비, 졸속 투자, 헐값 매각 등의 오명을 뒤집어쓴 채 지난 2일 국회의 징벌적 성격이 가미된 예산 칼날에 내년도 해외 자원개발 예산의 절반가량이 삭감됐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등 3대 자원개발 공기업은 정치권과 여론의 비판과 부채 감축 압박 속에 내년 신규 자원 발굴 계획을 잠정 중단했다. 전문가들은 “해외 자원개발사업에 대한 대안 없는 일괄적 예산 삭감으로 15년간 조성된 산업 기반을 한순간에 잃어 버릴 수 있다”면서 “성공률이 10~20%대로 낮은 고위험 장기 사업인 만큼 투자사업에 대한 평가는 적어도 15년 후에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석유공사가 2008년 이라크 쿠르드 5개 탐사 광구에 대한 계약을 체결한 이후 6년 만인 지난 6월 하울러 데미르닥 구조 광구에서 원유 생산을 시작했다. 현재 하루 생산량 6000배럴로 올해 2만 5000배럴, 2016년 10만 배럴 이상을 생산하는 등 2038년까지 4억 배럴을 생산해 7000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제공
한국석유공사가 2008년 이라크 쿠르드 5개 탐사 광구에 대한 계약을 체결한 이후 6년 만인 지난 6월 하울러 데미르닥 구조 광구에서 원유 생산을 시작했다. 현재 하루 생산량 6000배럴로 올해 2만 5000배럴, 2016년 10만 배럴 이상을 생산하는 등 2038년까지 4억 배럴을 생산해 7000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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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 관련 공기업 3사 등에 따르면 2015년 해외 자원개발사업 예산은 당초 정부안보다 1200억원 이상 삭감된 3594억원으로 확정됐다. 올해 예산(6391억원)보다 43.8%(2800억원)가 줄어든 수치다. 유전개발사업 출자는 올해 1700억원에서 내년 570억원으로 무려 66.4% 감축됐다. 국회 상임위원회는 석유공사가 미국에 셰일가스 신규 사업을 추진하려 했던 580억원 전액을 삭감했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유가가 하락한 지금이 자원개발의 적기인데 예산 삭감과 부채 감축 때문에 신규 투자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석유공사는 1월 발표될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국영석유사의 유전 재입찰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경영 정상화를 위한 광물자원공사 출자금도 2600억원에서 1512억원으로 41.8% 깎였다. 출자예산을 과도하게 삭감할 경우 해외 투자사업을 외부 차입으로 늘릴 수밖에 없어 부채 비율이 늘고 신용등급이 하락해 이자 비용이 상승함으로써 결국 투자 감소와 자산 매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민간 기업들의 자원개발을 지원할 목적으로 만든 해외 자원개발 융자금도 올해 2006억원에서 1437억원으로 500억원 이상 잘려 나갔다. 해외 자원개발 조사 예산도 13.3% 줄어든 68억원에 그쳤다. 정부 예산이 줄면서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민간기업의 신규 탐사사업도 위축되는 분위기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올해 민간기업의 신규 자원개발 탐사 계획은 한 건도 없었으며 내년에도 계획을 밝힌 회사가 아직 한 곳도 없다. 산업부 관계자는 “올 초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수요 조사를 벌였지만 재정 지원이 삭감되고 자원개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많다 보니 신규 사업 건의가 거의 없는 상태”라고 답답해했다.

성원모 한양대 자원공학과 교수는 “현재 15~20% 수준인 융자 규모를 40%까지 확대하고 신규 사업을 경영평가 지표에 넣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민간의 신규 탐사 사업 여건을 계속 마련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은녕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공기업에 문제가 있다면 투자처를 바꾸든지, 외국에서 우수 인재를 스카우트하거나 기술개발에 투자하면 되지 경쟁력을 강화하는 다른 대안 없이 민간기업 지원 예산을 깎는 건 자원개발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20대 공기업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는 3.02%였으나 석유공사, 광물공사의 경우 1% 이하에 그쳤다. 자기 경쟁력 강화에 소홀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기술 인력 확보 등 핵심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예산의 선택적 증액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정부는 제5차 해외 자원개발 기본계획(2014~2018년)을 발표하면서 기존 공기업 중심에서 민간 중심으로 재정 지원의 축을 옮기는 등 민간 투자를 확대하고 공기업을 내실화해 탐사 개발·역량을 강화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지난 5일에는 자원개발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서울대, 한양대, 인하대 등 자원개발 특성화대학 컨소시엄 5곳을 선정하고 2018년까지 연간 35억원을 지원해 고급 인력 220명을 양성하기로 했다. 내년에는 아부다비 석유대학 등과 석사 교류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광물자원공사는 부채 비율을 현행 176%에서 2017년 136%(4조 6000억원)로 낮추기 위해 1조 5075억원의 자산을 매각하고 5147억원의 해외 투자비를 아끼기로 했다. 석유공사는 올해 182%의 부채 비율을 2017년 157%(17조 9991억원)로 완화하기 위해 캐나다 하비스트사와 같은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사장 직속 경영쇄신위원회를 구성해 투자 의사결정을 투자리스크위원회 등 6단계에서 10단계로 늘리기로 했다. 가스공사도 대규모 민자 유치와 신속한 해외 자산 매각 등으로 부채 비율을 올해 312%에서 2017년 249%(43조 8000억원)로 감축시킨다고 밝혔다.

그러나 매각에 대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투자사업의 실패에는 시기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때인 1998~2000년대 초 부채 비율로 문제가 됐던 민간기업은 관리가 힘들어진 해외 광구 26개를 내다 팔았다. 스스로 감당이 안 돼 아예 포기한 광구도 나왔다. 자원이 헐값일 때 다급히 팔았던 광구들은 이후 자원 가격이 폭등해 기업들의 속을 태웠다.

김대형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일부 매각 결정들은 정치적 분위기에 휩쓸려 이뤄진 걸로 보인다”며 현재 70달러인 유가가 90~100달러로 정상화된다면 10년 뒤 대부분 수익 창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지금부터 내후년까지가 투자의 적기”라고 말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2014-12-05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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