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이혼訴 중 내연남에 손배소 “장기 별거로 이미 파탄 난 부부 제3자가 위자료 지급의무 없다”
통계청이 지난해 내놓은 ‘2013 통계로 본 여성의 삶’에 따르면 국내 혼인 가구 수의 10%에 이르는 115만 가구가 배우자와 떨어져 사는 별거 가구였다. 직장 문제로 인한 별거가 72.3%로 대부분이었다. 건강상 이유와 자녀 교육 문제가 각각 6.1%를 차지했다. 그런데 8.7%에 달하는 약 10만 가구는 가족 불화를 별거 이유로 꼽았다. 불화로 인해 별거하는 부부가 많아지며 ‘별거 중 부정행위’와 관련된 분쟁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특히 부정행위의 상대방인 제3자에게 책임을 묻는 소송이 제기되는 일도 적지 않다. 사실상 이혼한 것이나 다름없는 경우라도 법률적으로 이혼한 게 아니기 때문에 그동안에는 불륜을 저지른 제3자에게 위자료 등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판결이 잇따랐다.하지만 대법원이 이 같은 판단에 제동을 걸었다. 혼인 관계가 이미 파탄 난 기혼자와 불륜을 저질렀더라도 그 배우자에게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 등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온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20일 50대 남성 A씨가 이혼 전 자신의 부인과 불륜 문제로 얽힌 또 다른 50대 남성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A씨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관 13명 중 10명은 “장기간 별거하는 등 실질적으로 부부 공동생활이 깨져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경우 제3자가 부부 한쪽과 성관계를 가졌더라도 부부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다수의견을 냈다. 이상훈·박보영·김소영 대법관은 단순히 혼인이 파탄 났다는 사정 말고도 부부간 이혼 의사표시가 있었거나 소송을 내 이혼 판결을 앞둔 상황이라야 불법행위가 아니라는 별개의견을 냈다. 민일영·김용덕 대법관은 “부부 공동생활의 실체가 사라지고 이를 회복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경우 배우자의 간통에 묵시적으로 사전 동의한 것이라는 해석도 고려할 수 있다”고 보충의견을 냈다.
1992년 결혼한 A씨는 경제 문제, 성격 차이 등으로 부인과 불화를 겪다가 2004년부터 별거에 들어갔다. A씨는 부인에게 “우리는 더 이상 부부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두 아들을 남겨 놓은 채 집을 나갔던 부인은 2008년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A씨의 부인은 2006년 초 등산모임에서 알게 된 B씨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고 금전 거래까지 하는 등 친하게 지내다가 이혼소송 중이던 2009년 1월 자신의 집에서 B씨와 입맞춤과 애무를 하는 등 성적인 행위를 하게 됐다. 당시 집 밖에 있던 A씨가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성적인 행위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A씨는 부인 등을 간통 혐의로 고소했으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됐다. 이에 A씨는 “아직 이혼하지 않았는데 큰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B씨를 상대로 위자료 3000만원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냈다. A씨 부부의 이혼은 2010년 9월에야 확정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공동생활이 이미 파탄 난 부부 한쪽과 성적인 행위를 한 제3자에게 불법행위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개인의 성적 사생활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라는 현재의 사회 인식을 반영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2014-11-21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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