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앨범은 최근 가요계에서 주목받은 1990년대 가요의 아날로그 감성과 맞닿아 있다. ‘좋은 사람’, ‘여전히 아름다운지’ 등의 발라드를 통해 1990년대 감수성을 대표하는 유희열은 기존의 안정성을 지키면서도 힙합 뮤지션, 여성 가수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음악적 실험성을 높였다. 마치 대본을 쓰는 작가처럼 머리에 하나의 그림이나 스토리가 떠오르지 않으면 곡 작업을 중단했다는 그다. 최근 음악 감상회에서 만난 그는 “초창기처럼 컴퓨터가 아닌 피아노에 앉아 일일이 손으로 악보를 그리면서 만든 앨범이다. 사운드가 중요해진 디지털 음원의 시대지만 나는 곡의 구조와 멜로디를 여전히 중요시한다. 앞으로도 디지털 싱글이 아닌 정규 앨범을 고집할 것”이라고 말했다.
총 13곡이 담긴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은 가수 성시경이 부른 ‘세 사람’이다. 유희열은 “평소 애잔한 느낌의 발라드를 좋아하지만 가수들에게도 감정을 싣지 않도록 부탁한다”며 “‘좋은 사람’의 2014년 버전으로 10년 뒤 좋아했던 사람의 결혼식장에서 느낄 법한 감성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는 곡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가수들을 ‘혹사’시키는 작곡가로도 유명하다. 한 차례 녹음에 실패한 성시경은 열흘간 담배를 끊었다가 다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새 앨범의 마지막 두 곡은 자신이 직접 불렀다. ‘우리’는 그의 개인적 사연이 투영된 곡이고, ‘취한 밤’은 후반 작업 중 신해철의 부음을 듣고 술에 취해 쓴 곡이다. 어느덧 40대에 접어든 그는 “이제는 풋풋한 사랑이나 찬란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기가 머쓱한 나이기 됐다. 그만큼 가사를 쓰기가 너무 어렵다”고 고백한 뒤 “이번 앨범에서는 기존의 관조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현역 선수 느낌을 최대한 보여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