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철옹성 같던 지상파의 벽을 깬 ‘메이드 인 tvN’ 콘텐츠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방송가 안팎에서 입을 모으는 tvN의 가장 큰 흥행 비결은 “장르의 벽을 깨고 융합하는 조직의 유연함”이다. tvN에서는 예능담당 PD가 드라마를 만들고 드라마에도 다큐멘터리 요소가 거침없이 가미된다. ‘tvN표 킬러 콘텐츠’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 ‘롤러코스터-남녀생활백서’는 극화된 스토리에 다큐멘터리 전문 성우를 출연시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푸른 거탑’ 역시 예능과 드라마를 혼합해 성공했다. 롱런하며 인기를 모은 ‘막돼먹은 영애씨’는 아예 다큐드라마라는 낯선 장르를 개척한 산물이다.
예능국에서 제작한 ‘예능형 드라마’도 tvN만의 특장으로 꼽힌다. KBS에서 ‘남자의 자격’ 등을 연출했던 예능국 출신 신원호 PD는 tvN으로 이적한 뒤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시리즈를 연이어 히트시켰다. ‘식샤합시다’, ‘잉여공주’, ‘아홉수 소년’ 역시 예능 PD들이 만든 드라마다.
이명한 tvN 본부장은 “MBC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을 히트시킨 전력이 있는 송창의 tvN 초대 본부장 때부터 장르 간 융합을 적극 활용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서 “리얼리티, 시트콤, 코미디 전문 PD들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흥행으로 이어지는 측면이 크다”고 자평했다.
tvN의 기획회의 시간에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은 “지상파스럽다”는 것이다. 구태의연하고 익숙한 콘텐츠를 경계하자는 의미에서 나오는 말이다. CJ E&M 드라마사업본부 박지영 제작국장은 “지상파의 전형성은 우리의 기획회의에서는 깨뜨려야 될 그 무엇”이라고 말했다. 지상파에서는 문학적인 웹툰이라는 이유로 제작을 꺼렸던 ‘미생’이 탄생한 것도 그런 배경 덕분이었다. 최근 시중 최고의 화제작으로 뜨고 있는 영화채널 OCN의 ‘나쁜 녀석들’도 그런 경우. 영화 쪽 스태프들을 드라마 제작에 대거 참여시켜 ‘영화 같은 드라마’를 추구한 결과다.
2040 젊은층의 폭넓은 관심을 끌어내는 것도 tvN의 힘이다. “신참 PD들한테도 시청률 부담을 주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허락하는 풍토가 주효했다”는 게 내부평가다. 지상파에서는 조연출 이력 10년쯤을 거쳐야만 입봉하지만 tvN에서는 아이디어만 있다면 5~6년차에도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을 맡을 수 있는 것. 이 본부장은 “예능이나 드라마가 성공하는 데는 PD의 감성이 키포인트로 작용한다. 우리가 기획안 자체보다 연출진을 먼저 보는 이유”라면서 “PD가 브랜드화되면 어느 정도의 질이 보장되고 시청자들도 그 이면의 맥락까지 읽기 때문에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고 귀띔했다.
시골 출신으로 ‘촌놈’ 정서를 지닌 나영석 PD에게서 ‘삼시세끼’가 나왔고 1994년 대중문화의 열혈 소비자였던 신원호 PD에게서 ‘응답하라’ 시리즈가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 PD의 개성과 정서에 충성도가 높은 시청자들이 따라붙는다는 얘기다. 프로그램의 새로운 시도가 인정되면 낮은 시청률을 문제 삼지 않는 것도 tvN만의 제작 풍토다. 편집 감각이 뛰어난 입사 3~5년차의 젊은 PD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것도 특징이다.
캐스팅, 제작이 졸속으로 진행되기도 하는 지상파와는 제작 시스템부터 다르다. tvN에는 드라마를 기획하고 재정을 책임지는 프로듀서(기획 PD)가 따로 35명이 있고 이들이 외주제작사의 대표처럼 드라마의 기획에서부터 마무리까지 전 과정을 책임진다. 그런 덕분에 기획 제작 기간이 지상파와 비교가 안 될 만큼 충분히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다.
한 방송계 인사는 “요즘 지상파 드라마의 경우는 방영 두 달 전 캐스팅해서 한 달 전 촬영에 들어가는 졸속 제작 사례도 많다. 무조건 스타 캐스팅에만 의존하는 데다 보수적인 시각에 더디기까지 한 의사결정 구도로는 케이블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인기 드라마 ‘미생’의 판권 계약과정에서부터 참여한 이재문 프로듀서는 “원작 판권 계약 이후 지난해 겨울 내내 작가들과 한 번에 최소 8~12시간씩 회의를 거치고 조연 캐스팅에 200~300명의 오디션을 실시하는 등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쳤다”면서 “프로듀서는 기획 및 제반 사항을 관리하고 연출자는 작품에만 관여하기 때문에 책임감과 효율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프로그램 편성은 각 채널장(본부장)이 결정하는데 기획이 새롭고 신선하다면 2~3개월이 아니라 2시간 만에도 제작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