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한국인 헤이트 스피치’ 반대 도쿄대행진 르포
도쿄의 가을 하늘은 맑고 높았다. 단풍이 수줍게 얼굴을 붉히기 시작한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 도쿄의 중심지인 신주쿠중앙공원에서 흥겨운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특정 인종·집단에 대한 혐오 발언) 등 일본 사회에서 각종 차별이 만연한 것을 걱정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평화를 노래하는 ‘도쿄대행진 2014’가 시작된 참이었다.2일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열린 ‘도쿄대행진 2014’에 참가한 시민들이 헤이트 스피치 등 차별에 반대하는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도쿄대행진은 올해로 2회째다. 지난해에는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주도한 1963년 ‘워싱턴대행진’ 50주년을 기념해 9월 22일에 열렸다. 일본 정부에 ‘인종차별철폐조약의 성실한 이행’을 요구하며 인종이나 국적, 성적 지향 등으로 인한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올해의 테마는 노 헤이트. 부조리에 맞서 분노하기보다는 평화를 노래하는 축제의 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번에는 홈페이지(www.tokyodiversity.org)와 트위터(@tokyodiversity) 등으로 좀 더 조직력을 갖췄다.
시어머니, 아들과 함께 나온 스가와라 하쓰메(33)는 “지난해에는 신문을 통해 접했다가 친구에게서 올해도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나왔다. 헤이트 스피치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TV에서 (우익 성향의)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 등을 보며 기분이 나빠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Do the Right Thing’(옳은 일을 하라)이라는 영어 문구가 인쇄된 티셔츠를 맞춰 입고 나온 커플도 눈에 띄었다. 남편 호시노 와타루(38)는 “원래 정치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지만 2012년 겨울쯤부터 트위터를 통해 재특회를 알게 됐다. 그런 행동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 카운터(재특회에 반대하는 시위를 일컫는 말)를 시작했고, 지난해 도쿄대행진에도 참가했다”고 전했다. 부인 호시노 가나미(34)도 최근 일본 사회의 우경화에 대해 “이럴 때일수록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아베 신조 정권도 점점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다. 정권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이날 행진에는 헤이트 스피치를 막기 위한 인종차별철폐기본법안을 추진해 온 아리타 요시후(민주당) 참의원 의원도 참석했다. 아리타 의원은 “지난해보다 참가 인원이 증가했는데, 이 많은 인원이 이곳에 모였다는 것은 1년 동안 차별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본 내에서 늘어났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 안에서도 헤이트 스피치를 규제하기 위한 프로젝트팀이 설치된 것과 관련, “임시국회(11월 30일) 회기 중 인종차별철폐기본법안을 제출한다.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여당의 진정성은 이 법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2014-11-0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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