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보고서 내용 및 외교 관례 깨고 일방적 공개 배경은
일본 정부가 20일 발표한 고노 담화 검증 결과보고서는 한마디로 요약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일본 정부의 담화에 대해 일본과 한국이 긴밀히 협의했다”로 압축된다.다다키 게이이치(왼쪽) 전 일본 검찰총장이 20일 도쿄 지요다구 정부합동청사에서 가네하라 노부가쓰 내각관방 부(副)장관보와 함께 고노 담화 검증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도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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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정부가 당시 문안 조정 사실을 대외에 공표하지 않는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는 내용과 고노 담화의 토대가 된 군 위안부 피해자 대상 청취 조사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사후 조사가 없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더불어 한국 측이 담화 작성 전 “(담화 내용은) 한국 국민으로부터 평가를 받는 것이어야 한다”고 요구했다는 내용과 “일본에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는 내용, 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청취 조사 종료 전 이미 담화의 원안이 작성돼 있었다는 내용 등도 명시됐다.
보고서는 또 “담화 발표 전날인 1993년 8월 3일 주일 한국대사관으로부터 ‘본국의 훈령에 근거해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 측의 안(案)을 평가하며, 한국 정부로서는 그 문안으로 충분하다’는 취지의 연락이 있어 이것으로 고노 담화의 문구에 대한 최종적인 의견 일치를 봤다”고 썼다.
세세한 내용은 어찌 됐든 이번 보고서는 양국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전 조율을 했다는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담화의 의미를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아베 신조 총리는 1차 정권(2006년 9월 26일~2007년 8월 27일) 때 일본 정부의 위안부 강제 동원에 증거가 없다는 각의 결정을 한 바 있다. 2012년 12월 2차 정권 출범을 앞두고 고노 담화의 수정을 강력히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강제 동원의 증거가 없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를 한 고노 담화는 수정하거나 나아가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다. 아베 총리의 강경한 입장은 한국은 물론, 미국 정부로부터도 강력한 반발을 사면서 지난 3월 “수정은 하지 않지만, 검증은 한다”는 선에서 후퇴해 일본 정부가 검증팀을 꾸리고 이날 보고서를 내기에 이른 것이다.
보고서가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 먼저 고노 담화가 공동화(空洞化), 무력화될 공산이 커졌다는 점이다. 일본 정계의 한 중진은 “아베 총리가 헌법에 금지된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 각의 결정을 통해 행사를 용인함으로써 헌법 9조를 공동화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노 담화의 성립 자체가 마치 한·일 정부의 합작품인 것처럼 보고서를 냄으로써 담화가 공동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전망했다. 즉 헌법 개정의 절차를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 여부를 국민들에게 물어봐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내각 결정이라는 꼼수를 통해 우회하려는 아베 정권의 정치 수법이 고노 담화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반발을 살 수 있는 고노 담화의 수정 없이 담화의 역사적 의미를 축소하고 뒤흔들려는 의도가 명확한 셈이다.
또한 고노 담화가 한국 정부의 입장을 상당 부분 반영해 결정된 것처럼 이미지를 조작, 위안부 문제를 호도할 우려가 커진 것도 문제점으로 꼽을 수 있다. 고노 담화 보고서는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증언을 청취하는 등의 절차는 밟지 않았다. 따라서 강제성 여부를 재론할 여지는 없지만 당시 양국 정부의 의견 교환을 공개함으로써 마치 담화 작성에 한국 입김이 작용했다거나 나아가 “한국에 당했다, 속았다”거나 “자학 외교”라는 우익 성향의 일부 정치인과 언론의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특히 21년 전의 외교 사항에 대해 일본 정부가 상대국 양해 없이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은 외교 관례로 볼 때 비상식적인 일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 보고서는 지극히 정치적 의도를 띠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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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담화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군의 강제성을 인정한 담화. 담화에는 “위안소는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명시했다.
2014-06-2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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