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건진다” 민·관·군 합동구조팀 총력 작전
‘세월호 침몰’ 사고 닷새째인 20일 해양경찰(해경)과 해군, 민간 잠수부 등이 전남 진도의 사고 해역에서 활발한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기적’을 건져 내지는 못했다. 기다렸던 생환 소식 대신 가라앉은 선체에서 시신 10여구만 뭍으로 나왔다.사고 뒤 첫 주말인 19~20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세월호 내부에 진입해 본격적인 수색 작업을 벌였다. 잠수부들은 19일 오전 5시 50분쯤 여객선 3~4층 계단 통로에 들어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4층 격실 창문 너머로 시신 3구를 발견했다. 오후 11시 48분 수차례 시도 끝에 손도끼로 유리창을 깨고 4층에서 남성 시신 3구를 물 위로 끌어올렸다. 잠수부가 선체 내부에서 피해자를 발견해 수습한 것은 사고 뒤 처음이었다. 수십㎝ 앞조차 가늠할 수 없는 탁한 시계(視界) 탓에 피해자가 발견된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객실로 보였다. 실종자 가족 사이에 기대감이 커지기도 했지만, 잠수부들이 발견한 것은 숨을 거둔 시신뿐이었다. 21일 오전 1시까지 22구의 시신이 선체 안팎에서 수습되면서 사망자는 58명으로 늘었다.
더디기만 하던 수색 속도가 빨라진 것은 ‘생명선’으로 불리는 가이드라인(안내선)과 손도끼 등 수동 장비 덕이었다. 로프의 일종인 가이드라인은 침몰한 세월호 선수와 선체 중앙부 등에 20일까지 모두 5개가 묶였다. 성인 남성 손가락 굵기인 로프는 수면 위에서 선체까지 이어져 있다. 잠수사 수백 명이 사흘간 번갈아 투입돼 라이트 불빛과 손의 감각으로 선체 돌출 부위에 묶었다. 수면 아래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까닭에 잠수부들은 가이드라인을 부여잡고 천천히 이동해 겨우 선체에 닿을 수 있다. 이 줄이 5개까지 설치되면서 그동안 2인 1조로 20여분간 선체를 수색하는 데 그쳤던 구조팀은 8~10명씩 동시에 입수해 구조 수색 작업을 벌일 수 있게 됐다. 선내 유리문을 깨뜨린 ‘특수 손도끼’는 민간 잠수부의 아이디어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쇠뭉치의 끝을 뾰족하게 갈아 손잡이를 단 모양으로 유리를 찌르듯 깨뜨리는 장비다. 묵직한 도끼를 동원해도 해저 수압 때문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사고 이후 줄곧 좋지 않던 기상과 조류도 뒤늦게 호전됐다. 빠른 유속으로 악명 높은 맹골수도 조류는 속도가 최저가 되는 ‘조금’(23일)이 되면 8일 전보다 유속이 40% 정도 느려진다. 미국으로부터 원격 조종 무인잠수정 ROV 2대를 지원받아 현장 투입을 앞두는 등 첨단 장비도 동원되고 있다.
ROV는 원격 수중 탐색장비로 1980년대부터 깊은 바닷속에서 난파선 탐사, 기뢰 제거 등 위험 임무에 활용된 기계다. 관측함과 ROV를 케이블로 연결해 원격 조종하는 방식으로 해저 영상을 전달받아 수중 탐색에 활용한다.
또 이날 오후 사고 현장에 긴급 공수된 바지선(짧은 거리에서 화물을 수송하는 부선)이 정박해 잠수사들이 대거 투입할 준비를 마쳤다. 민간 잠수업체의 선박과 해경, 해군의 소형 선박들은 바지선에 잠수장비 등을 실어 놓고 잠수사들도 바지선 위로 올라탔다. 정조 시간인 오후 5시쯤에는 민간 잠수사 1개조가 바지선에서 잠수했다. 합동수색팀은 20일 민·경·군 잠수부 560여명과 함정 204척, 항공기 34대 등을 동원해 집중 수색을 벌였다.
사고대책본부는 이날까지 잠수부를 투입한 수색 구조 방식을 유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선박 표면을 절단한 뒤 진입해야 한다는 요구도 잇따랐지만 선체의 중심이 흔들려 에어포켓(선실에 형성된 공기층)이 줄어 생존자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이후 줄곧 ‘오보’를 양산해 빈축을 샀던 정부는 주말에도 사망자 수를 정정하는 등 허술한 모습을 보였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19일 밤 세월호 주변 50m 부근 해상에서 시신 3구를 추가로 수습해 사망자가 39명까지 늘었다고 밝혔지만 이내 “선체 안에서 발견된 시체를 두 번 셌다”며 정정했다. 분노한 실종자 가족들은 20일 청와대 항의 방문을 시도했다. 오전 7시쯤 진도대교에 모여 청와대로 가려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의 설득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정홍원 국무총리까지 나서야 했다. 1시간에 걸친 설득에도 실종자 가족들의 입장이 완강하자 정 총리는 차량에 탑승해 자리를 떠나려다 2시간여 동안 발이 묶였다. 경찰과 대치 중 가족 중 한 명이 오열하다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한편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으로 출동하던 해군 구축함 대조영함(4500t)에서 화물승강기 정비 작업을 하던 중 머리를 다쳐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승조원 윤모(21) 병장은 19일 끝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진도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2014-04-21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