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선, 정부의 지원정책과 규제는 동전의 앞뒷면 같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는 관련분야의 산업 진흥을 위해 지원정책을 만들고 이를 시행하고자 관련법을 제정한다. 대표적인 규제부처라 할 수 있는 환경부조차도 환경산업 지원법을 운용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특정 산업 진흥을 위해 제정한 관련법에는 지원정책과 규제가 모두 포함돼 있다. 즉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인증제나 지정제 같은 규제 울타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인증 및 지정제는 결국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게 된다. 진입장벽을 넘지 못해 지원을 받지 못한 기업은 한국사회가 불공평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무원은 이때부터 기업에 대하여 영원한 ‘갑’이 되는데 누가 그러한 갑의 지위를 놓고 싶겠는가.
둘째, 정부는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주로 산하기관을 설립한다. 처음에는 소규모 사업단으로 시작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예산을 받을 수 있는 독립된 산하기관으로 규모를 키운다. 이들 산하기관은 법령에 근거해 설립되며 법에서 위임한 지원정책이나 규제를 담당한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규제개혁 바람이 불어 부적절한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하려면 산하기관을 없애거나 규모를 축소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정부 입장에서는 자신의 업무를 수족처럼 맡아서 해 주고 퇴직 공무원을 내보내는 곳으로도 활용하는 산하기관을 없애는 것이 싫을 수밖에 없으며, 산하기관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밥줄’이 없어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으므로 거세게 저항하게 된다. 한 번 만들면 없애기 어렵다는 숨겨진 진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셋째로, 부처들 간의 업무 성격이 달라 충돌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제조업 육성을 위해 공장입지를 공급하려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수도권 입지를 관장하는 국토교통부, 그리고 수질과 대기오염을 관장하는 환경부 간의 대립은 무엇이든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게 한다. 이들 부처 공무원은 그곳으로 발령이 난 이후 나름대로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을 갖고 맡은 업무에만 전념해 왔기 때문에 다른 부처의 영역을 고려할 여유가 없다. 또한 자신들의 업무 영역이 넓어져야 더욱 힘 있는 부처가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정책적 규제가 논의 대상이 되면 어김없이 시민단체들이 개입하게 되고 해결은 점점 어려워진다.
지난 끝장토론에서 제기된 ‘자정 이후 청소년의 온라인게임 접속을 금지한 셧다운제’도 좋은 사례다. 여성가족부는 청소년보호를 위해 규제하려 하고,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임산업 진흥을 위해 풀어야 한다고 한다. 이런 규제는 경제적 관점과 사회적 관점 간의 갈등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단칼에 해결하기 어렵다. 결국 사회 여론에 휩쓸리는 경향이 높다. 참고로 행정규제기본법은 이러한 중요규제에 대하여 규제영향분석을 통해 비용과 편익을 분석해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과연 이들 부처는 규제영향분석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철저히 했을까.
올바른 규제개혁을 위한 수단으로 규제총량제, 네거티브 방식으로의 전환, 베터 레귤레이션(better regulation) 등이 다시 거론되고 있지만 그동안 이런 걸 몰라서 못한 것이 아니다. 규제개혁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집단(민간이든 공무원이든)과의 싸움이기에 어렵고 외로운 것이고 그래서 용두사미가 되기 쉽다. 그래도 꾸준히 시도돼야 한다. 규제개혁의 최종 목표는 정부의 비정상적인 역할을 정상으로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시장실패가 없는 한, 레퍼리로 머물러야지 플레이어로 직접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014-04-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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