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더 이상 호갱님이 되고 싶지 않다/한준규 사회2부 차장

[데스크 시각] 더 이상 호갱님이 되고 싶지 않다/한준규 사회2부 차장

입력 2014-02-21 00:00
수정 2014-02-21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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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규 사회2부 차장
한준규 사회2부 차장
설 연휴에 스마트폰을 바꿨다. 2년을 넘기면서 배터리 성능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한 달여를 속칭 인터넷 버스폰 폐쇄몰을 기웃거렸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통신사들이 보조금을 풀지 않아서 최신식 기기가 아니더라도 40만~50만원을 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반가운 쪽지가 왔다. 설 연휴 동안에만 ‘갤럭시 노트 2 번호이동 19만원’이라고 한 인터넷 카페에 공지가 올라온 것이다.

출시된 지 1년여 된 모델이지만 이틀 전에는 40만원에 팔리던 것이었다. 6개월 전 같은 제품을 70만원에 샀다고 자랑하던 호갱(호구고객) 후배 얼굴을 떠올리며 얼른 신청을 했다. 그러자 전화가 왔다. 지금 당장 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40만원을 주고 샀을 수많은 호갱님들보다 20만원이나 싼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기쁨에 바로 달려갔다. 서류작성을 마치고 상자도 뜯지 않은 갤럭시 노트 2를 들고 나오는 발걸음은 정말 가벼웠고 기분은 날아갈 듯했다.

기쁨도 잠시였다. 설 연휴가 지나자 나 역시 호갱님이 돼 버렸다. 구입한 제품 가격이 5만원으로 내려갔다. 무려 14만원이란 거금을 바가지 쓴 꼴이 됐다. 얼마 전에는 아예 공짜로 팔기도 했다. 불과 열흘 사이에 19만원을 바가지 쓴 호갱님으로 전락한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니 우리 국민이 모두 ‘호갱님’이 됐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정말 ‘스마트폰’ 가격이 묘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이 쌀수록 좋다. 보조금이 많이 투입돼 가격이 내려가면 훨씬 이득이다. 이동통신의 서비스 품질 차이가 거의 없어진 상황에서 휴대전화기나 통신요금이 싼 통신사로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보조금 재원이 전체 통신서비스 이용자가 내는 요금에서 나오지만, 혜택을 보는 이용자는 극소수이다. 대부분 온라인을 통해서 싼 물건이 거래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정보 접근이 취약한 중장년층 이상 이용자는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또 보조금 혜택이 통신사를 바꾸는 번호이동 고객에게만 집중되는 것도 문제다. 이동통신사들은 손쉽게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서 보조금 투입이라는 방법을 택한다. 한 통신사를 오래 쓰는 충성 고객은 ‘철새’ 고객보다 도리어 비싼 값을 치르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더 이상 국민을 호갱님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가 통신요금과 스마트폰 가격에 낀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 국내 최고 통신사 SK텔레콤의 지난해 순이익은 1조 6095억원에 달하고 영업이익은 2조원을 넘어섰다.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면 우리 국민의 주머니를 엄청나게 턴 것이다. 물론 반론도 만만찮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국내 통신사들은 매년 수조원의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통신요금을 더욱 낮출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제조사인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36조 700억원의 영업이익과 30조 4748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한 삼성전자가 국내에서 106만 7000원에 팔고 있는 갤럭시노트3를 미국에서는 699달러(70만원)에 팔고 있다. 무려 30만원 이상의 차이가 난다. 우리 국민이 호갱님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는 보조금의 규제뿐 아니라 높은 단말기 출고가와 불투명한 판매점 유통구조 등 전방위적인 판매 구조 개선에 나서야 한다. 소비자는 더 이상 호갱님이 되고 싶지 않다.

hihi@seoul.co.kr
2014-02-2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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