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는 아직도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아직은 덜 발전한, 혹은 덜 ‘타락’한 아프리카 케냐가 지상의 천국일 거라고 믿는다. 그 믿음이 착각임은 두 말할 나위 없다. 그녀가 사랑일 거라고 여기는 케냐의 흑인 소년 및 청년들은 한결같이 돈을 위해 사랑을 판다. 그녀가 하나둘 그들을 만날 때마다 그 착각은 점점 더 선명해진다.
호텔 프런트에서 일하는 남자와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착각은 환멸로 변한다. 그 이전의 남자들과는 달리, 돈을 요구하지 않는 남자는 적응이 안 된다며 그녀의 유혹 내지 육체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녀의 여성성, 즉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그로써 그녀를 비참의 극단에 빠지게 하고, 그녀에게 결정적으로 사랑은 비즈니스라는 깨달음을 안겨준다. 아프리카인의 어떤 자존감을 웅변하면서.
결말부에서 이 영화의 주제 및 감독의 문제의식이 축약적으로 드러난다. 불편을 넘어 불쾌하기까지 한 영화에서 일종의 숭고미가 감지되는 건 그래서다. 환멸을 통해 테레사는 비약적 성장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남자의 거부를 통해 타락 일변도로 치닫던 아프리카(청년들)의 어떤 희망,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가히 감동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파라다이스 러브’는 미하엘 하네케(‘피아니스트’, ‘하얀 리본’, ‘아무르’)와 더불어 영화 강소국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문제적 감독 울리히 자이들의 ‘천국 삼부작’ 그 첫 번째 이야기다.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에 이어 부산영화제에서도 선보였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은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파라다이스: 신념’이며, 세 번째 편은 올 베를린영화제와 부산영화제 등에서 소개된 ‘파라다이스: 호프’다.
감독은 극사실주의적 다큐 스타일로, ‘추의 미학’을 형상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극단적인 소외 상황에 처한 추하고 고독한 아웃사이더들을 도발적이고 논쟁적인 드라마로 옮겨 왔다. 이 영화도 그들 중 하나다. 120분. 17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전찬일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