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고노담화 발표 직전… 국가별 분리 대응
일본 정부가 1990년대 초반 군 위안부 문제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동남아시아에서 실태 조사를 고의로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아사히신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일 간 정치 문제로 부각되던 1992~93년 한국에서는 실시한 청취 조사를 동남아에서는 고의로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13일 보도했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외교 문서와 당시 관계자 인터뷰를 종합한 결과 일본군이 위안부 강제동원에 관여했음을 인정하는 내용의 ‘고노 담화’를 발표하기 직전인 1993년 7월 30일 무토 가분 당시 외무상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주재 일본 대사관에 “(위안부 문제에 관한) 관심을 괜히 부추기는 결과가 되는 것을 피할 필요가 있다”며 실태 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전달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도 진상 규명을 추진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던 당시 공식 입장과는 정반대의 움직임이다. 이는 일본 정부가 한국과 다른 국가들을 분리해 대응함으로써 위안부 문제를 조기에 수습하려 했음을 보여 준 것이라고 신문은 덧붙였다.
이와 관련, 당시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에서 위안부 문제를 담당했던 고위 관계자는 “문제가 커지고 있던 한국 이외에서 위안부 문제를 확대시키고 싶지 않았다. 문제를 다시 들춰내 타국과의 관계를 불안정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당시 인도네시아 외무부 정무총국장이었던 윌요노 사스트로워도요(79)는 신문에 “더 비판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지만 대통령의 뜻에 따라야 했기 때문에 괴로웠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는 1958년 일본과 전쟁 배상 문제를 매듭짓고 우호 관계를 유지했으며, 일본 중시 정책을 펼친 수하르토 당시 대통령의 노선 때문에 1998년 정권 붕괴 전까지 일본군 피해 문제에 냉담했다.
인도네시아가 일본으로부터 받은 개발도상국 대상 공적개발원조(ODA)는 2011년까지 총 5조 2000억엔(약 56조 7000억원)으로, 개별 국가로는 최대 규모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2013-10-1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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