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파·부실 2배 이상 많았던 교학사 교과서
한국현대사학회 소속 보수 진영 학자들이 집필한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국사편찬위원회(국편)의 검정심사 과정에서 479개 수정 요구를 받은 것으로 30일 드러났다. 교학사 교과서를 제외한 나머지 7종의 교과서는 207~302개씩 수정 요구를 받았다. 교학사 교과서의 수정 부분이 다른 교과서보다 2배 이상 많았다는 얘기다.다른 교과서 저자들은 교과서 집필 경험이 있었던 반면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은 경험이 부족했던 게 주원인으로 꼽히지만 교학사 교과서가 특정 용어에 집착하는 경향도 수정 지적을 늘린 요인으로 작용했다. 명성황후가 나오는 부분마다 ‘중전 민씨’로 지칭해 여러 차례 수정 지적을 받는 식이었다. ‘중전 민씨’란 표현은 2008년 뉴라이트 진영인 교과서포럼에서 낸 대안교과서에서 명성황후를 ‘민 왕후’라고 표현한 것과 상통했다.
다른 교과서가 외면한 사료를 활용하려는 시도도 국편의 검정심사 과정에서 지적 대상이 됐다. 교학사 교과서는 최종 심사단계까지 ‘장준하의 5·16 선언에 대한 평가’를 참고자료로 사용하려 애썼지만 국편이 제재해 실패했다. 정황상 교학사 교과서에서 쓴 자료는 5·16 정변이 당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불가피했음을 지적한 1961년 장준하 선생의 사상계 기고글로 보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적인 장준하 선생마저 5·16 정변을 인정했음을 암시하며 정통성을 부여하려 한 듯하지만, 국편은 ‘장준하 일생의 정치적 입장에 비춰 볼 때 예외적인 사례이고 장준하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왜곡시킬 우려가 크다’며 자료를 배척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로 재평가하려는 시도도 엿보였다. 이 전 대통령이 3·15 부정선거 후 4·19 의거로 인해 하야할 당시 발표한 담화문 중 ‘우리 동포들이 지금도 38선 이북에서 공산당이 호시탐탐 기다리는 것을 알고 기회 주지 않도록 힘쓰길 바란다’는 내용의 발췌문을 제시한 뒤 ‘이 전 대통령이 하야를 결정하며 무엇이 가장 큰 관심사였는지 생각해 보자’는 탐구과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 새로운 도시가 나타나고 공업화가 급진전하고 근대교육을 받은 신여성이 등장했다는 묘사는 일제 지배로 인해 우리의 근대화가 촉발됐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교과서는 또 ‘세계 최악의 인권 유린 국가’라거나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문제점을 전형적으로 보여 준다’며 북한의 억압적 분위기와 경제난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당초 (북한 주민이) 쥐를 잡아먹는 사진을 넣었다가 국편의 권고에 따라 사진을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의 과정에서 일부 표현이 정제됐지만 교학사 교과서가 이승만·박정희 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일제 독립운동사 등을 편파적으로 기술했을 가능성에 역사학계는 촉각을 세우고 있다.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는 “한국사가 수능 필수가 됐는데 교실에서 한쪽으로 편향된 역사를 가르쳐서는 안 될 것”이라면서 “8종의 교과서 내용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2013-08-31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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