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숙 논설위원
그러나 정작 작가는 말로 정곡을 찌른다는 촌철살인마저 경계한 것 같다. 작가가 돌아가시기 전 딸과 나눈 대화가 그렇다. 평소 작가는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말수가 적었지만 한마디 말을 던지면 그게 촌철살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작가는 딸에게 “촌철살인도 살인이잖니? 하면 안 되는 건데…”라고 하셨단다.
평생 언어 조탁(彫琢)을 업으로 했던 노작가도 이렇듯 말을 조심했건만 요즘 세상은 너무나 말을 쉽게 많이 한다. TV에선 연예인들이 쉴새없이 수다를 떨고, 정치권은 현란하지만 실속 없는 말싸움으로 국민들을 피곤하게 한다. 보통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는 것도 모자라 휴대전화를 부여잡고 통화하고, 손가락으로 끊임없이 문자를 보낸다. 이런 말들 가운데 누군가를 감동시키는 따스함이 깃든 말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언어의 살인’도 난무한다.
이런 현상은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생기면서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남들과 소통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남을 헐뜯고 비방하는 도구가 아닐까 여겨질 정도다. SNS는 자칫, 잘 쓰면 약이 되고 못 쓰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최근 축구선수 기성용 케이스다. 20대의 치기어린 말로 여기기에는 과하다 싶을 글들을 SNS에 올렸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고, 결국 최강희 전 국가대표팀 감독과 국민들에게 머리를 숙여야 했다.
우리 속담에 ‘세 치 혓바닥이 몸을 베는 칼’이라는 말이 있다. 혀는 그 길이가 세 치(약 10㎝)에 지나지 않지만, 이 혀를 잘못 놀려서 큰일을 그르친다는 뜻이다. 중국 송나라 때 책 ‘태평어람’(太平御覽)에도 ‘병(病)은 입으로 들어오고 화(禍)는 입에서 나온다’고 적혀 있다. 이렇듯 입에서 내뱉어진 말들은 자칫 분란과 화(禍)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최근 53만 팔로어를 두고 힐링 전법사로 활동해 온 혜민스님이 트위터에 “너무 많은 말을 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 당분간 묵언(默言) 수행을 하며 부족한 스스로를 성찰하겠다”고 한 것도 ‘말의 무서움’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해 초 세계 커뮤니케이션 데이를 맞아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소통)으로 소란해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침묵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말은 많이 할 때보다 절제할 때 더 빛나는 법이다. 침묵은 또 다른 언어임을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다.
논설위원 bori@seoul.co.kr
2013-07-1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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