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15만원 못내 촛불 켜고 자다… 할머니·손자 ‘화재 참변’

전기료 15만원 못내 촛불 켜고 자다… 할머니·손자 ‘화재 참변’

입력 2012-11-22 00:00
수정 2012-11-22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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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주택서 60대·6세 아이 사망

틀에 갇힌 정책이 조손 가정의 비극을 불렀다. 21일 오전 3시 50분쯤 전남 고흥군 도덕면 주모(60)씨 집에서 불이 나 주씨의 부인 김모(58)씨와 외손자(6)가 숨지고 주씨가 화상을 입어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은 “오전 3시쯤 외손자가 소변이 마렵다고 해 아내가 촛불을 켜고 안방에 있는 요강에 소변을 보게 했다.”는 주씨의 진술로 미뤄 주씨 부부가 전기요금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촛불을 사용해 왔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주씨는 경찰에서 “잠을 자던 중 머리에 불이 붙어 외손자를 안고 밖으로 나오려고 했으나 다리가 불편해 먼저 피했다.”며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불길이 번져 있었다.”고 말했다

주씨는 6개월분 전기요금 15만 7000여원을 내지 못해 지난달 31일 한전으로부터 전류 제한 조치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전류 제한기를 단 가구에는 TV, 전등 1~2개, 소형 냉장고를 동시에 쓸 수 있을 정도의 전기만 공급되며 순간 사용량이 220와트를 넘으면 전기가 차단된다.

경찰 관계자는 “전기요금에 부담감을 느낀 주씨 부부가 촛불을 끄지 않고 잠드는 바람에 불이 난 것으로 보인다.”며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씨는 떨어져 사는 딸의 아들을 자신의 호적에 올려 키워 왔다. 하지만 다리가 불편한 주씨가 경제적 활동을 하지 못해 아내 김씨가 마을 인근 유자 생산공장에서 일당을 받고 일을 해 어렵게 생활비를 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씨 부부는 물론 외손자도 정상적인 지능 수준은 아니었다고 이웃들은 전했다.

고흥군은 주씨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하려 했으나 현 고흥군수와 동창인 주씨가 근로를 거부해 수급비를 주지 않았고, 장애 진단에 필요한 지원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전날에도 군 관계자가 주씨의 집을 방문했지만 전류제한 해제를 지원하지 못했다. 고흥군은 ‘관리 대상’으로 선정해 생필품 등을 지원했지만 “공무원이 ‘규정’에 없는 현금을 지원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전은 비난이 집중되자 ‘면피성 해명’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한전은 “주씨 집에 전류 제한기를 설치한 이후 전력을 사용했다.”고 해명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또 한전은 순간 사용량을 넘겨 전기 공급이 자동 차단된 뒤 리모컨으로 켜는 방법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씨는 경찰조사에서 “전기를 전혀 쓰지 못했고 리모컨도 있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시골 노인들이 전류제한 조치가 뭔지 알겠느냐.”며 “집안이 모두 타버려 전류 제한기 설치 여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조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광주·전남 지역에서 전류 제한기를 단 주택은 모두 560가구다.

이에 대해 순천대 사회복지학부 이신숙(56) 학과장은 “고령이나 누가 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국가나 지자체가 법에만 의지하지 말고 따뜻한 관심을 기울이는 온정이 중요하다.”면서 “법 규정도 중요하지만 결손가정이나 생활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는 국가가 관심을 기울여 복지 혜택을 주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고흥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2012-11-22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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