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은 “강이관 감독이 ‘파란만장’을 잘 봤다며 연락해 왔다. 16세 아들을 둔 미혼모 역할이란 얘기를 듣고 거절했다. 오랜만에 장편을 찍는데 좋은 역을 맡고 싶었다. 미혼모는 여배우가 가장 꺼리는 역”이라고 말했다. 이어 “감독님이 더 생각해 보라고 했다. 미혼모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찾아봤는데 안타까운 사연이 많더라.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새롭게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수락했다.”고 덧붙였다.
꼼꼼한 강 감독은 35회차나 촬영했다. 5억원짜리 저예산 영화임을 떠올리면 이례적이다. “어린 신인배우들 때문에 같은 장면을 여러 번 촬영했다. 그런데 내 장면은 모두 한두 번에 끝냈다. 섬세하게 뽑아 주실 줄 알았는데 그렇게 대충 찍으실 줄은 몰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감정이 북받친 효승이 일하던 미용실의 집기를 부수고 드러누워 통곡하는 장면도 딱 두 번에 끝냈다. “저예산 영화라 시간과 돈을 아낀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스태프들이 괴로워하니까 나도 힘든 티를 못 내겠더라. 10여년 만에 현장에 돌아와 보니 누나, 언니라고 부르는 스태프가 많아졌다. 나도 늙었나 보다.”라며 웃었다.
극 중 효승과 지구는 엄마와 아들로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어린 미혼모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 ‘동안 종결자’ 이정현을 캐스팅했기 때문이다. “감독님이 나한테 미안하니까 얼굴은 마주치지 않고 분장 스태프에게 슬쩍 ‘(이정현씨 나이 들어 보이게 눈 밑에) 다크서클 그려 주세요’라며 지나치곤 했다. 피부 색깔이 너무 환해서 일부러 두 톤 정도 죽였다. 하하하.”
이정현은 내년 초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이 연출한 ‘명량-회오리 바다’에 최민식(이순신 역)과 함께 출연한다. 그즈음 미니앨범을 내고 가수로서 국내에서 방송 활동도 재개한다. 그는 “지난 10여년 동안 너무 아등바등 살았다. (시나리오가) 들어오는 대로 영화를 찍고 한국 관객과 만났어야 했다. 그런데 배우로 출발해서인지 다시 연기를 할 때는 정말 좋은 작품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서른 문턱을 넘어서면서 비로소 그 욕심들을 내려놓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노래와 연기, 둘 중 어떤 것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죽을 때까지 좋은 가수와 배우로 남고 싶다.”고 다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