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추석과 말춤, 그리고 세대의 몫/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추석과 말춤, 그리고 세대의 몫/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입력 2012-09-25 00:00
수정 2012-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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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추석이다. 그동안 각자 바쁜 일로 만날 기회가 적었던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고 가족 놀이를 하면서 끈끈한 유대감을 확인하는 날이다. 그런 즐거운 추석을 앞두고 나는 고민을 한참 했다. 대학생 딸과 함께 이번 추석에 어떤 공통의 관심사로 대화를 나눌 것인지가 막막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세대 간에 문화적 격차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조용필의 노래를 부르던 세대와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부르는 세대와의 격차는 아마도 타자기 세대와 스마트폰 세대의 차이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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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걱정 끝에 한 가지 주제를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와 말춤이다. 딸에게 먼저 이야기를 한다. 아빠 대학 다닐 때에는 서양 대중음악에 미쳤다고. 1960년대 말 영국의 팝가수 클리프 리처드가 내한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김포공항에 마중 나온 수백명 단발머리 소녀들의 광적 열광은 모 여대의 공연장으로까지 이어져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고.

딸 세대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을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그 질문은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K팝’과 싸이의 말춤을 생산하고 향유하는 세대에게 있어서 서구 추수주의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그들에게 서구는 더 이상 세계의 중심도, 그들의 행위와 가치를 규정하는 절대적 기준도 아니다. 대신 그들은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세계를 품에 안을 웅대한 꿈을 꾼다.

1970~1980년대 고고장과 디스코텍, 마이클 잭슨, 서부 영화 등과 같은 서구 대중문화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싸이의 등장이야말로 가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유학을 해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하는 싸이가 미국 방송과 인터뷰를 하면서 “이 무대에서 한국어로 말하고 싶었다. 죽이지.”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는 순간,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한국 사회를 앞으로 이끌어 나갈 젊은 세대가 지니고 있는,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한 무한한 자긍심과 위풍당당함을 싸이의 노래와 춤과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방현석의 소설 ‘존재의 형식’에는 베트남 전쟁 때 목숨을 걸고 싸운 베트콩이 등장한다. 그는 전쟁이 끝난 자리에서 세대의 몫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세대는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어떤 이념을 떠나 진정 인간다운 삶을 꿈꾸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왔다. 그래서 베트콩이 되어 싸웠다. 그것이 그들 세대의 몫이다. 다음 세대는 가난한 베트남을 위해 해야 할 또 다른 몫이 있다.

딸에게 말한다. 1960년대 서구 대중문화에 대한 젊은이의 열광을 서구 추수적인 태도로 무조건적으로 비하해서는 안 된다고. 젊은이의 뜨거운 열정을 창조적으로 승화시켜 줄 변변한 문화적 장치 하나 마련하지 못한 1960~1970년대 한국 문화의 후진성을 그 사건은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빠 세대는 열심히 살아왔으며, 이제 딸 세대는 막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한국을 전 세계 일등 문화 국가로 만들 몫이 있다고.

사회가 역동적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사회에 면면히 이어져 오는 공동체적 정서를 모든 세대가 공유해야 한다. 그러면서 인간다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 각 세대는 자신의 세대에게 주어진 몫에 충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앞선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윽박지르고 길들이고, 그 결과 다음 세대가 그들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될 때, 그 사회는 도태하기 마련이다.

이번 추석에는, 공부는 잘하는지, 어떤 대학에 갈 것인지, 대학 졸업해서 뭘 할 것인지, 결혼은 언제 할 것인지 따위를 제발 물어보지 말자. 그리고 고압적인 자세로 어른들의 생각을 젊은이들에게 강요하지 말자. 대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함께 정성껏 차례상을 차리면서 추석에 담긴 우리네 고유한 정서를 되새겨 보자. 그리고 젊은 세대의 깊은 속내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들이 새로운 문화 창조의 길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자. 그런 노력들이 쌓이고 쌓이면 제2, 제3의 ‘싸이’가 나오지 않겠는가.

2012-09-2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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