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여, 사랑하니까 지킨다

바다여, 사랑하니까 지킨다

입력 2012-08-05 00:00
수정 2012-08-05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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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환경 보호하는 스쿠버 다이버 모임 ‘울진바다지킴이’

“바다를 좋아하니까요.” 경상도 사나이의 짧은 대답에서 단단한 의지가 묻어났다. ‘울진바다지킴이(www.uljinsea.com)’ 부회장 김종배 씨(48세)가 10년째 고향의 바다를 지켜온 이유는 그걸로 충분했다. 좋아하는 걸 자신의 힘으로 지켜내려는 다짐이었다.

울진바다지킴이 회원들은 모두 물속을 누비는 스쿠버 다이버다. 처음 4~5년 동안은 여느 동호회처럼 취미 삼아 즐기는 모임이었다. 그러다 1999년 ‘지킴이’라는 이름을 달고 순전히 봉사를 목적으로 모이기 시작한 건 그들이 사랑하는 바다가 더러워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창단 회원 박근호 씨(44세)는 푸르렀던 울진의 바다를 기억한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다이빙하면 눈앞에 무성한 미역을 헤쳐나갔는데, 지금은 허연 바위 위에 불가사리와 성게투성이예요.” 그 뒤로 13년간 해안과 바닷속의 쓰레기를 수거하길 60여 차례, 불가사리 같은 해적 생물을 잡아 올리길 40여 차례다.

지난 6월 둘째 주 토요일 아침, 현내항(경북 울진군 울진읍)의 바닷속은 여전히 앓고 있었다. 닥치는 대로 바다 식물을 먹어 백화현상을 심하게 하는 성게, 군소와 천적이 없어 생태계를 교란하는 불가사리는 사람이 직접 수거해야 효과적이다. 휴일을 반납하고 부둣가에 모인 다이버들이 잠수복으로 갈아입으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샛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연안의 파고가 1m에 달했다. 다이버를 배에 태우고 운전하는 김병철 씨(50세)는 “최악의 조건”이라고 했다. 파도 거품 때문에 잠수 중인 인원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워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었다. 무엇보다 바닷속의 흔들림이 심해 이리 쓸리고 저리 쓸려 한곳에 머물러 채취하기가 어려웠다. 잠수를 마치고 배에 오른 일부 다이버들은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성게 가시가 손톱에 박힌 다이버도 있었다.

이날 수거한 양은 1t가량. 김종배 씨는 외부 동호회 인원을 포함해 20여 명이 작업한 것치고는 너무 적다며 아쉬워했다. 정부에서 1㎏에 800원씩 주는 보조금은 늘 그랬듯 지역 어촌계에 돌려주었다. 작업이 끝난 오후 3시, 늦은 점심으로 매운탕 한 그릇씩 얻어먹으면 그만이었다.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다가 봉사를 하게 된 울진바다지킴이 사나이들. 이제는 거꾸로, 봉사를 하기 위해 회원으로 가입해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현재 활동하는 회원 23명 중에 3분의 1 정도가 그런 경우다. 이날 작업에 참여한 남상현 씨(28세)는 1년 전만 해도 물이 무서워 수영도 못하던 사람이었다. “해초 같은 건 건드리는 것도 싫어했어요. 하지만 나도 울진에서 나고 자란 바다 사람인데, 두려움을 극복하고 우리 바다를 지키고 싶었죠. 또 네 살 난 우리 아들이 해산물을 좋아하거든요.(웃음)”

매년 7월이면 울진바다지킴이의 2층짜리 컨테이너 사무실이 있는 죽변항의 해변은 200여 명의 아이들로 북적인다. 직접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 중인 ‘스쿠버 체험교실’이 열리기 때문이다. 올해는 10회를 맞아, 300여 명의 초·중등학생이 직접 스쿠버 장비를 착용하고 바닷속 세상을 관찰할 예정이다. 당일 프로그램이며, 참가비는 무료다. 울진바다지킴이 회장 김재선 씨(42세)는 앞으로 교육청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이 프로그램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그밖에 게임이나 과학 실험을 하면서 해양 환경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깨닫도록 하고 있어요. 바닷속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깨닫고 바다를 아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게 없죠. 아직 일회성 행사라는 한계가 있어서 꾸준히 규모를 늘려갈 겁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다른 지역 ‘바다지킴이’의 모태가 되고 싶다. “영덕에 영덕바다지킴이, 포항에 포항바다지킴이가 생길 수도 있는 거잖아요. 바다를 사랑하는 스쿠버 다이버들이 자기 고장의 바다를 지켜주면 좋겠어요. 저희가 얼마든지 노하우를 알려드리고 돕겠습니다.”

글·사진 송충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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