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 패럴림픽 출전하는 손병준 군과 아버지 손은수씨
약속은 무려 세 번이나 미뤄졌다. 2012 런던 패럴림픽 탁구선수의 스케줄은 생각보다 빠듯했다. 지난 2월부터 계속된 집중훈련과 휴가기간 출전한 대회일정을 무사히 마친 손병준 군(17세)을 아버지 손은수 씨(46세)와 함께 만났다. 무리한 일정 탓에 병준 군은 다소 지쳐 보였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잘 다독였다. “병준아, 이거 끝내고 저녁 맛있는 것 먹자.”아버지는 닭갈비와 과일을 좋아하는 아들과 단둘이 살고 있다. 부자(父子)가 다른 식구들이 있는 원주에서 나와 이곳 춘천에 살게 된 이유는 순전히 병준 군의 진학 때문이었다. 현재 병준 군이 다니는 춘천 성수고는 강원도에서 탁구부가 있는 유일한 고교이다. 체육교사인 아버지는 아들을 성수고에 보내고, 본인은 바로 옆 학교인 남춘천여중에 자원했다. “병준이가 2학년이니까 춘천 온 지 이제 2년인데, 요즘이 제일 좋아요.”
병준이가 탁구를 시작한 건 아버지 때문이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잘나가는 탁구선수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들에게 탁구를 가르친 데에는 남모르는 아픔이 있다. “초등학교 때는 다른 애들보다 성장이 늦은 줄만 알았어요. 5학년 때쯤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았어요. 탁구부에 들어가지 않고는 일반 중학교에 갈 방법이 없었어요.” 탁구 특기생으로 고등학교까지라도 졸업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버지는 아들에게 탁구라켓을 쥐어줬다.
누구나 한 번도 안 해본 일을 잘하게 만들기는 힘들다. 더구나 같이 배우는 아이들은 지금까지 탁구를 해온 엘리트 선수들. 남들에겐 그저 간단한 기술이래도, 병준이에게 쉬운 거라곤 없었다. 운동 강도도 그렇지만, 친구들과의 반목이 아버지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더 어린 녀석들이 놀리고 때리고, 한마디로 왕따였으니까요.” 그럴수록 아버지는 아들에게 엄격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더 오래, 더 힘들게 아들을 담금질했다.
노력도 노력이지만, 피는 못 속였다. 아버지를 닮은 아들의 실력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2010년 처음 출전한 장애인대회에서 병준 군은 10전 전승으로 우승하며 태극마크를 달았고, 이후 참가한 해외대회에서 색깔별로 메달도 따 왔다. 2012년 런던 패럴림픽 출전권의 경우에는 1등이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아시아 지역 쿼터가 한 명인 상황에서 이룩한 쾌거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점수는 짜다. “너무 공격적으로 하는 성향이 있어요. 강약 조절이 필요한데, 공격 찬스가 아닌데도 자꾸 밀어붙이니까 실수가 발생하죠.”
그래서 아들이 먼저 아버지를 자랑한다. “아버지는 생각과 마음이 참 좋으세요.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시고요.” 그제야 아버지가 부끄러운 듯 바통을 넘겨받는다.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기고, 똑똑하고, 착하고, 말도 잘 듣고, 자랑스러운 아들이지요.” 이래서 치사랑보다 내리사랑인가. 아버지가 하는 칭찬이 훨씬 길고 구체적이다.
병준 군은 이제 한 달 남짓한 휴가를 마치고 다시 이천 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 입소를 앞두고 있다. 입소하면 많이 적적하겠다고 걱정을 하니 아버지는, 아침 7시면 깨워, 밥 챙겨줘, 등교시켜야 하는 ‘아들 뒤치다꺼리’를 안 해 홀가분하다며 아들 몰래 씩 웃는다. 그러고는 “어제 병준이가 자다가 쌍코피가 났어요. 많이 피곤한 것 같더라고. 들어가서 잘 먹어야 할 텐데” 한다. 아버지 마음이란, 단단한 듯 보여도 한 꺼풀 벗기면 이렇듯 무르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마음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금메달이 아니어도 된다”보다는 “이왕이면 금메달 따자”고 아들을 응원한다. 그럼 “부담스럽다”고 할 법도 한데 아들은 “자신 있다”고 답한다. 무너지지 말라고 주문하는 아버지의 스매싱과 걱정하지 말라고 받아치는 아들의 걷어내기다. 한 꺼풀 벗기지 않아도 부자(父子)는 다 알고 있다.
글 송은하 기자 ㅣ 사진 성도현 대학생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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