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서울 강남의 복부인들이 땅을 사려고 제주도에 온 뒤 택시를 타고 현지에 갔다. 택시 운전기사는 복부인들이 매입한 곳 근처에 땅을 구입해 엄청난 돈을 벌었다.” 몇년 전 국세청장이 사석에서 한 말이다. 정보에 밝은 국세청장의 얘기이니 사실에 매우 근접할 것이다. 머리 회전이 빠른, 재테크에 밝은 택시 운전기사는 생각하지도 않은 복부인을 손님으로 모신 덕에 이런 횡재를 할 수 있었다. 이런 복 있는 택시 운전기사도 있겠지만, 만취했거나 좀 이상한 승객 탓에 곤란을 겪어 본 택시 운전기사들이 훨씬 많을 듯싶다.
자가용이 귀했던 1970년대 중반만 해도 자가 운전자는 ‘사실상’ 없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인 현대자동차의 자그마한 ‘포니’ 주인도 스스로 차를 몰지는 않았다. 포니의 배기량은 1200~1300㏄로, 크기는 현재 경차와 비슷하다. 요즘은 대형 승용차라고 해도 세차장이 아니면 먼지도 제대로 털지 않을 정도가 됐지만 자가용이 드물었던 1970년대에는 운전기사가 주인이 나오기 전에 포니에 있는 먼지를 매일 털어야 했다. 소득이 늘면서 마이카 시대로 진입한 뒤에도 돈이 많거나 권력 있는 인사들은 운전대를 잡을 필요가 없다.
자가용 운전기사들은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차주와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사실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본의 아니게 차 주인이 전화하는 것을 듣는 등 중요한 사항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지난 2004년 4월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후보로 출마한 A씨는 당선이 유력시됐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열린우리당 출신들이 어부지리를 얻었지만, A씨는 그것과 상관없이 당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선거연락사무소를 열기 위해 지역책임자를 선정하고 선거자금을 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운전기사의 제보가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200억원을 빼돌린 뒤 중국으로 밀항하려던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의 계획이 최근 수포로 돌아간 데에도 운전기사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영업정지된 미래저축은행에 파견된 금융감독원 감독관이 김 회장의 행방을 다그치자, 200억원 인출에 개입했던 운전기사는 경기도 화성시 궁평항에서 소형 어선을 타고 밀항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5개월간 준비한 김 회장의 밀항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김 회장은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못된 짓을 했으니 처벌받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닐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자가용이 귀했던 1970년대 중반만 해도 자가 운전자는 ‘사실상’ 없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인 현대자동차의 자그마한 ‘포니’ 주인도 스스로 차를 몰지는 않았다. 포니의 배기량은 1200~1300㏄로, 크기는 현재 경차와 비슷하다. 요즘은 대형 승용차라고 해도 세차장이 아니면 먼지도 제대로 털지 않을 정도가 됐지만 자가용이 드물었던 1970년대에는 운전기사가 주인이 나오기 전에 포니에 있는 먼지를 매일 털어야 했다. 소득이 늘면서 마이카 시대로 진입한 뒤에도 돈이 많거나 권력 있는 인사들은 운전대를 잡을 필요가 없다.
자가용 운전기사들은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차주와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사실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본의 아니게 차 주인이 전화하는 것을 듣는 등 중요한 사항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지난 2004년 4월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후보로 출마한 A씨는 당선이 유력시됐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열린우리당 출신들이 어부지리를 얻었지만, A씨는 그것과 상관없이 당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선거연락사무소를 열기 위해 지역책임자를 선정하고 선거자금을 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운전기사의 제보가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200억원을 빼돌린 뒤 중국으로 밀항하려던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의 계획이 최근 수포로 돌아간 데에도 운전기사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영업정지된 미래저축은행에 파견된 금융감독원 감독관이 김 회장의 행방을 다그치자, 200억원 인출에 개입했던 운전기사는 경기도 화성시 궁평항에서 소형 어선을 타고 밀항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5개월간 준비한 김 회장의 밀항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김 회장은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못된 짓을 했으니 처벌받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닐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2012-05-09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