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삶 그의 꿈] 세상에서 가장 싸지만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밥’

[그의 삶 그의 꿈] 세상에서 가장 싸지만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밥’

입력 2012-03-25 00:00
수정 2012-03-25 12:04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 광주 대인시장 ‘해뜨는 식당’ 김선자 할머니

이 밥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밥’이다. 밥의 가치는 딱 1,000원. 분식집 라면 한 그릇의 절반 값도 안 된다. 하지만 이 밥을 먹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다. ‘밥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밥을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밥’이라고 했다.

된장국에 김치를 포함해 3가지 반찬이 전부지만 ‘마법의 밥’이다. ‘맛 있다’ 추켜세우는 사람 없어도 밥 앞에는 늘 사람이 넘친다. ‘맛 없다’ 투정하는 사람도 없다. 그들이 떠난 자리엔 단돈 1,000원밖에 남지 않았지만 웬일인지 식당에는 쌀이 차곡차곡 쌓인다. 본전도 안 되는 돈을 받고 밥을 해 팔아도 쌀이 줄지 않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는 식당에 ‘밥’ 먹으러 갔다.

이미지 확대


이미지 확대


세상에서 가장 싼 밥상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 광주의 오래된 재래시장 중 한 곳인 이곳에 ‘해뜨는 식당’이 있다. 시장 골목 어귀에서 길을 물었더니 얼마 전 장소를 옮겠다고 했다. 상인들이 알려준 골목을 찾아가자 허름한 간판이 보였다.

식당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출입문에 큼지막하게 ‘백반 1,000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난로 위에 놓인 큰 냄비에서 끓고 있는 구수한 시래기 된장국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식당 안은 작은 테이블 2개와 벽 쪽으로 붙은 간이 테이블이 전부였다. 한꺼번에 10명 남짓 들어갈 수 있었다.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손님이 몇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한쪽 테이블에 앉았다. 반가운 인사를 건넨 김선자(69) 할머니가 반찬과 된장국, 밥을 내왔다. 김치와 단무지 무침, 멸치볶음이 전부인 소박한 찬이었지만 정갈했고, 밥맛도 최고였다.

지난 2010년 6월 문을 연 이 식당은 처음부터 ‘1,000원 백반’ 만을 고집하고 있다. 김선자 할머니는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도 당당하게 돈을 내고 먹을 수 있고 돈의 소중함을 깨닫도록 밥값을 1,000원만 받고 있다”고 했다. 대인시장에 식당을 연 건, 재래시장이 활성화 됐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다고 했다.

이미지 확대


이미지 확대


사랑으로 함께 짓는 밥

해뜨는 식당은 ‘마법의 식당’이다. 1,000원으로는 쌀값도 감당하기 힘들지만 이 식당은 매월 적자를 보면서도 벌써 2년째 문을 열고 있다. 해뜨는 식당은 오전 9시에 문을 열어 오후 8시에 문을 닫는다. 손님은 하루 평균 90명꼴. 하지만 밥값이 1,000원인 탓에 하루 매출액은 평균 9만 원에 불과하다.

쌀이나 반찬 재료를 구입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하루에 20kg들이 쌀 한 포대가 들어가는 데다 이틀에 한 번꼴로 김치나 깍두기를 담가야 한다. 한 달 월세도 10만 원에 전기요금과 수도요금 등을 포함해 매월 50만 원이 더 나간다. 겨울에는 연탄난로로 난방도 해야 한다. 최근에는 식당을 옮기면서 목돈도 들었다.

이미지 확대
쌀을 마련하지 못해 고민할 무렵,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인근에 살고 있는 주민이 쌀 3포대를 가져다 준 것이다. 이 주민은 앞으로도 매월 쌀 3포대씩을 기증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연탄이 딱 1장 남았을 때는 어디서 소식을 접했는지 한 교회에서 연탄 300장을 마련해 줬다. 작년 연말에는 김장김치 100포기를 싣고 식당을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식당을 찾았다가 밥을 먹고 큰 돈은 아니지만 밥값의 몇 배를 조용히 내고 가는 사람들도 많다. 만원 몇 장을 내밀며 ‘많이 내지 못해 죄송하다’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식당에는 아직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끊이지 않고 있다.

김선자 할머니는 “우리 식당에서의 만원은 다른 식당의 10만 원보다 값어치가 있다. 이런 분들이 있기에 식당을 유지할 수 있다. 아직은 세상이 각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식당을 위해 작은 도움이라도 준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입구에는 후원자를 적는 안내판도 만들었다. 이 안내판에는 이름보다 이름이 없는 사람들의 이름이 더 많았다.

“부자들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후원을 하더군요. 이분들에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어요”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밥

“어려운 사람들이 반찬은 없지만 따뜻한 밥을 먹고 기운을 차리면 좋겠네요.” 식당을 운영하는 할머니의 소원이다. 그리고 이같은 마음 탓인지 이 밥은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밥이 됐다.

식당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사람들은 시장 인근의 배고픈 사람들이다. 대인시장에서 야채 노점을 하는 상인들과 노인들, 일용직 근로자 들이 이 식당의 가장 큰 단골이다. 이날도 야채를 팔던 할머니가 꾸깃꾸깃한 1,000원을 내밀며 밥을 먹고 갔다.

“추위를 피해 식당에서 따끈한 국물에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좋다”는 할머니는 “해뜨는 식당이 생기기 전에는 집에서 싸온 찬 도시락을 먹거나, 2,000원짜리 비빔밥을 사 먹었다”고 했다.

주머니가 가볍거나, 정(情)에 굶주린 사람들도 단골이다. 시장 인근에 사는 가난한 대학생들도 이 식당을 자주 찾는다. 예전 어머니가 끓여준 된장국이 생각나 일부러 찾아왔다는 중년 손님들도 있다. 된장국에 반해 냄비를 가져와 돈을 주고 된장국만 사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혼자서 식당을 꾸리는 할머니는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라면서 궂은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2010년 7월 식당을 열었을 때도 주변 가족들이 모두 반대한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오히려 “세상에서 받은 사랑을 세상으로 돌려주기 위해 이 일을 택했다”고 했다.

또 “평생 동안 못한 설거지와, 평생 못한 밥을 2년 만에 다 한 것 같다”며 “손님들이 맛있게 드시고 가는 모습을 보면 날마다 행복하다. 많은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글·사진_ 강현석 《전남일보》 기자

※ 해뜨는 식당: 광주 동구 대인동 대인시장 309-14번지. 후원문의:062-227-7073.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