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통미봉남’에 맘 급해진 정부 외교 ‘무리수’

北 ‘통미봉남’에 맘 급해진 정부 외교 ‘무리수’

입력 2012-03-10 00:00
수정 2012-03-10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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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용호 참석’ 美세미나 서둘러 참석…“옵서버 자격→정식 참가” 급히 요청 북측 ‘투명인간’ 취급에 경색만 확인

한국 정부가 북한 문제와 관련, 민망한 ‘굴욕외교’를 펼친 것으로 드러나 비판이 일고 있다. 한국 정부가 7~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반도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는 과정에서 무리수를 뒀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8일 현지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미 시러큐스대와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공동 주최한 이번 세미나는 진보성향의 한인단체인 미주동포전국협회가 두어달 전부터 추진해 열리게 됐다. 이런 까닭에 한국 측 참석자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문정인 연세대 교수 등 진보성향의 인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리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 등 북측 당국자들이 세미나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미 국무부에 이들에 대한 비자 발급 거부를 요청했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결국 ‘2·29 북·미합의’ 직후인 지난 1일 미국 정부가 리 부상 등의 비자를 내주자 이번에는 세미나에 ‘옵서버’ 자격으로라도 참석하게 해 달라고 주최 측에 호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옵서버는 발언권이 없다는 점을 알고는 정식 참가자 자격을 부여해 달라고 다시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러니 다른 참석자들 입장에서는 한국 정부는 ‘불청객’이었던 셈이다.

●북측 “남측과는 사진 안 찍겠다” 냉대

세미나 참석자 중 한 명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기자들에게 “원래 한국 정부는 초청 대상이 아니었는데 무리하게 끼어들었다.”면서 “한국 정부에서 ‘끼워 주지 않으면 세미나를 깨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주최 측이 북한에 양해를 구해서 세미나에 참석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무리를 해서 참석한 세미나에서 한국 정부는 북측으로부터 ‘냉대’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석자는 “임성남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이 리 부상에게 다가가 대화를 시도했지만, 리 부상의 반응은 냉랭했다.”고 전했다. 심지어 북측은 “남측 당국자와 나란히 앉을 수 없다.”거나 “남측과 같이 사진을 찍고 싶지 않다.”고 이의를 제기, 가벼운 소동도 일어났다고 한다. 또 북측 기조발제에 이은 한국 정부 당국자의 토론에 대해 북측은 아예 대꾸를 안 하는 등 ‘투명인간’ 취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은 “한국 정부가 통미봉남(通美封南)에 대한 국내 비판여론을 의식해 무리수를 둔 것”이라면서 “좀 더 의연하게 할 수 없었는지 아쉽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2006년 4월 비슷한 학술행사에서 6자회담 남북 수석대표 간 회동이 성사된 경험 때문에 낙관적인 판단을 내린 게 패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리용호 “先북미개선-後북핵해결”

반면 한국 정부와 가까운 다른 외교소식통은 “한국 정부는 이번 세미나가 남북협의를 위한 좋은 기회라고 판단해 주최 측에 참석 의사를 전달했고, 북측으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전달받아 참석하게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 당국자들이 좋은 느낌을 갖고 뉴욕에 왔는데 의외로 북측 반응이 냉랭하자 뭔가 북측 입장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판단 미스’가 아니라는 얘기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대화 한 번 제대로 못해 본 채 스타일을 구기고 남북관계 경색만 확인한 꼴이라는 비판은 면키 어렵게 됐다.

한편 세미나에서 리 부상은 ‘선(先)북·미 관계 개선-후(後)북핵 해결’을 주장했으며, 임 본부장은 북한이 남북관계에 호응할 것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2012-03-1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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