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프리뷰] ‘래빗홀’

[영화프리뷰] ‘래빗홀’

입력 2011-12-13 00:00
수정 2011-12-1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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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시간과 방법 사람마다 다르지요

2007년 미국 퓰리처상과 토니상의 최대 화제작은 데이비드 린제이의 연극 ‘래빗 홀’. 교통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은 후 상실감에 시달리는 젊은 중산층 부부의 이야기를 관객들은 한발짝 떨어져 지켜보게 된다. 작가는 관객들의 지나친 감정 이입을 막는 장치를 곳곳에 배치해 눈물샘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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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잃은 뒤 8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평정심을 되찾지 못하는 베카의 신경질적인 모습에 때론 ‘저럴 것까진 없는데, 왜 그럴까’란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관망만 하게 놔두지도 않는다. 밤마다 아들의 생전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부정(父情)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관객들은 베카와 호위 부부가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을 서서히 마음속 한편에 묻어두고 서로 이해하며,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렸다. 오는 22일 개봉하는 영화 ‘래빗 홀’의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06년 뉴욕타임스에 실린 연극 ‘래빗 홀’에 대한 리뷰를 읽은 니콜 키드먼(왼쪽)은 제작을 결심했다. 그뿐만 아니라 베카 역을 맡겠다고 나섰다. 순풍에 돛단 듯 영화화가 이뤄졌다. 2002년 ‘물랭루즈’로 미국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을, 이듬해 ‘디 아워스’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 독일 베를린영화제를 휩쓸었던 키드먼에게도 베카 역은 새로운 도전이다.

신경쇠약 직전의 여성과 차오르는 슬픔을 가슴에 묻고 의연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다층적인 모습을 연기하는 건 쉽지 않았다. 올초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아쉽게도 ‘블랙스완’의 내털리 포트먼에게 밀렸다.

호위 역의 아론 애크하트(오른쪽)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에서 반은 선하고, 반은 악한 존재인 허비 덴트 검사를 맡아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 아내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슬픔을 극복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싸워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연기를 훌륭히 소화해 연기 인생의 정점을 찍었다.’(보스턴 글로브)는 평가를 받았다.

2000년 영화 ‘헤드윅’에서 주연과 각본, 연출을 도맡았고, 2006년 ‘숏버스’로 제한 상영등급 논란을 일으켰던 재주꾼 존 캐머런 미첼이 두 배우의 조화를 이끌어 냈다. 슬픔과 절망 속에도 큭큭거리며 웃게 만드는 유머 코드를 집어넣는 그의 특기가 작품에서 빛을 발한다.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직접 겪어 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무게는 다를지라도 누구에게나 상실과 그리움은 있다. 관건은 주저앉는 대신 극복하고, 일어서느냐에 달려 있다. ‘래빗 홀’의 위로와 메시지가 많은 관객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까닭이다. 아픔을 잊어가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자신의 방식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때론 상대에게 보폭을 맞춰 가는 것도 필요하다.

‘래빗 홀’이란 극 중 베카가 읽는 만화책 제목이다. 우주에는 래빗 홀을 통해 연결되는 수많은 세계가 존재하고, 이 구멍을 지나면 사람들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북미에서는 지난해 12월 소규모(최대 131개관) 개봉했다. 박스오피스모조에 따르면 전 세계 흥행수익은 340만 달러(제작비 500만 달러). 그렇게 묻히기에는 아까운 영화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2011-12-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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