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자’ 마이클 페티드 뉴욕주립대 교수, 한국을 말하다

‘한국학자’ 마이클 페티드 뉴욕주립대 교수, 한국을 말하다

입력 2011-06-27 00:00
수정 2011-06-27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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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세계 고전’ 될수 있어 시인보다 소설가 노벨상에 근접”

“‘엄마를 부탁해’ 같은 현대소설만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닙니다. ‘홍길동전’ 같은 옛소설도 얼마든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세계의 고전이 될 수 있습니다.”

‘한류’ 바람이 거세다. K팝이 유럽을 뒤흔든 사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로 대표되는 한국 소설은 서풍을 타고 미국으로 건너가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 고전문학을 전공한 마이클 페티드(52) 미국 빙엄턴 뉴욕주립대 교수는 누구보다 한류를 주의 깊게 바라본다. 그는 미국 학생들을 상대로 문학 외에 한국사와 대중문화 등도 가르치고 있다. 다음 달 6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한국국제교류재단 어셈블리(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서울 상암동 숙소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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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페티드 뉴욕주립대 교수
마이클 페티드 뉴욕주립대 교수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서 호평 받고 있다고 한다. 뉴욕에서 한국 문학의 인기를 실감하나.

-물론이다. 문화적 ‘한류’와 한국문학은 세계적 유행을 탔고 뉴욕도 예외가 아니다. 학생들도 한국 문학에 익숙해져 가고 한국 소설이나 영화가 나오면 찾는 이가 늘었다. 소녀시대, 원더걸스, 비, 보아 등 K팝도 호응을 얻는다. 한국 문학을 대상으로 한 문단의 비평도 활발해졌고 우리 대학 도서관에 한국소설 번역본이 갈수록 늘고 있다. 미국 대학생들은 문학 작품을 좀처럼 안 읽는데 수업시간에 100쪽 넘는 한국 소설을 주면 단번에 읽는다.

→한국 문학의 주요 소비층은 유학생이나 교포 아닌가.

-물론 유학생이나 재미교포가 먼저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들이 학교 등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백인, 흑인 등 ‘순수’ 미국인이다. 입소문을 통해 전파된다. 2008년 우리 대학 한국어 과정의 전공자 95%가 한국계였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1, 2학년은 거의 다 백인과 흑인, 다른 외국인들이다.

→미국에서 신경숙 외에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한국 작가가 있나.

-김영하 등 젊은 작가들에 대한 평가가 좋다. 김영하는 지난해 미시간에서 만나기도 했는데 젊은층의 삶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작가다. 예컨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I have right to destroy my self) 같은 소설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동양적 정서를 담은 한국 소설이 서양에서 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인이나 한국인이나 살아가면서 겪는 고난은 똑같다. 부모에 대해 느끼는 애틋함, 대학생이 느끼는 혼란 등 피차 같은 고민을 한다. 미국 대학생도 등록금 걱정을 하고 사랑 때문에 힘들어하고 높은 실업률 탓에 백수가 될까 봐 스트레스를 받는다. (삶의 진실을 찾아 나선 대학생의 방황을 그린) 강석경 작가의 소설 ‘숲 속의 방’ 같은 작품에는 미국 대학생들이 느끼는 것과 같은 문제의식이 녹아 있다. 6년 전 현대문학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 소설을 읽혔는데 반응이 좋았다.

→한국 소설의 세계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무엇인가.

-좋은 팀을 이뤄 번역하는 일이 중요하다. 한국어 원어민 1명과 영어 원어민 1명이 협동해 번역해야 말맛과 느낌을 살릴 수 있다. 세심하게 작업하지 않으면 뜻만 통할 뿐 느낌을 살릴 수 없다. 그런데 여전히 혼자 일하는 번역가가 많다. 내 친구인 (대표적 한국문학 번역가) 브루스 폴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교수는 한국인 아내 윤주찬씨와 함께 번역한다. 그래서 질이 높다. 나도 한국인인 내 아내와 함께 고전 ‘운영전’을 번역했다.

→한국 기관들의 번역 지원 사업에 불만은 없나.

-번역을 지원해 주는 기관이 3~4곳 있다. 그런데 번역작품 선정위원이 모두 한국인이다. 서양사람도 들어가야 한다. 현지에서 통할 작품을 선정하는 일에 현지인의 시각이 들어갈 필요가 있다.

→한국인들은 노벨 문학상에 대한 갈증이 심하다. 왜 여태 못 받았다고 생각하나.

-노벨 문학상은 상당히 정치적이다. 아시아에서는 대표적으로 일본이 2명의 노벨상 수상 작가를 배출했는데 그 배경에는 태평양전쟁이라는 특별한 상황이 있었다. 이 전쟁을 아는 서양인들이 일본 소설에 담긴 메시지를 읽고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물론 (노벨상 수상자인)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 같은 작가는 천재다. 하지만, 한국에도 그에 못지않은 작가들이 있다.

→한국인이 수상한다면 누구일까. 고은 시인 수상 가능성은 매년 점쳐지는데.

-내 생각에는 시인보다 소설가가 더 가능성이 있다. 요즘 사람들이 시를 많이 읽지 않는 데다 시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 나라의 문화를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에게 어려운 일이다. 특정 작가를 꼽기 어렵지만 앞서 말한 김영하 같은 작가가 후보가 될 수 있겠다. 서양인들이 한국 소설을 읽고 ‘틱’하는 (깨달음의) 순간이 오면 노벨상도 같이 찾아올 것이다.

→한국 고전문학이 전공이다. 우리 고전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세계의 고전이 될 가능성이 있나.

-(될 수 있다고) 100% 확신한다. 작품 머리글에서 역사적 배경을 잘 설명하고 번역만 잘한다면…. 한국 고전에는 홍길동전이나 임경업전 같은 영웅물, 구운몽 같은 판타지물, 옛 여성들의 어려운 삶이 담긴 규방소설까지 장르가 다양하다. 예컨대 아랍권 여성들이 규방소설을 보면 어떨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고전은 한문장 한문장 깊이가 깊다.

→K팝의 성공 비결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화려한 퍼포먼스 덕분인 것 같다. 한국 댄스 가수들이 무대에서 공연하는 걸 보면 라스베이거스에 와 있는 것 같다. 중국의 후한서나 삼국지를 보면 고대 한국인들도 춤과 음악, 술을 즐겼다고 나와 있다. 그만큼 특유의 ‘끼’가 있다는 것이다. 또 한국 사람들은 노래방 가서 부끄러움 없이 연습한다. 한국인 피가 섞인 내 딸은 고작 5살인데 노래를 잘한다.

→주제를 바꿔 보자. 왜 한식은 세계화에 어려움을 겪나.

-(전략적)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하는 것 같다. 예컨대 영부인 김윤옥 여사가 몇 년 전 뉴욕에서 파전을 만들며 홍보했다. 파전은 맛있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아니다. 떡볶이도 엑스포까지 열어 수출에 열을 올리는데 이 또한 대표 음식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식 바비큐도 미국에서 인기는 있지만 채식 위주로 구성된 전통적 한식과는 차이가 있다. 일본의 초밥, 인도의 커리처럼 한국 하면 떠오르는 ‘얼굴’을 만들어야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의 대표 음식은 뭔가.

-‘밥상’ 그 자체다. 한국식 밥상에는 밥, 국, 김치, 마늘, 들기름 등이 한꺼번에 올려지고 다양한 맛과 냄새, 질감 등이 혼합돼 음양오행의 조화를 이룬다. 주의할 점은 음식을 너무 현지화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현지화가 일정 부분 될 수밖에 없지만 원래 맛 그대로를 찾는 서양인이 많다. 태국음식도 매우 맵지만 원래 맛 그대로 미국에서 판매해 인기를 얻는다. 미국 사람들이 일본식 생선회를 처음 접했을 때 ‘날생선을 어떻게 먹느냐.’고 했지만 지금은 잘 먹는다.

글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2011-06-27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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