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 출신… 新군부 압력 물리친 참교육자
일제 강점기 광복군에 참가했던 중국 전문가 김준엽(사회과학원 이사장) 전 고려대 총장이 7일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90세.●학병으로 징집… 장준하 선생과 탈출
한·중 수교 이듬해인 93년 베이징대를 시작으로 2002년까지 산둥, 난징, 옌볜대 등 중국 내 9개 대학의 객원교수직을 맡았고, 60∼70년대에는 3차례 한국대표로 유엔총회에 참석했다.
한국현대사에서 김 전 총장은 드물게 큰 결점 없이 지성인으로 존경받은 인물이었다. 80년대 신군부 집권 이후에는 비타협적인 자세로 제자들을 보호하다 총장직에서 물러나는 아픔을 겪었다. 83년 가을에는 연·고전이 치러지지 못했다. 당시 연·고전이 끝나면 수만명의 학생들이 거리에 나서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때문에 전두환 정권은 행사를 취소시켰고, 고대생들은 학생회관에서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당시 고려대 총장이던 김준엽 총장은 경찰의 진입을 막았다. 김 총장은 교내 방송을 통해 “학생 제군들, 몸을 다치지 마라.”고 말했고, 학생들은 다음 날 무사히 학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총리 후보 올랐지만 교단 떠나지 않아
전두환 정권은 84년 각 대학에서 총학생회가 부활되자 문교부(현 교육부)를 통해 각 대학 학생회장을 물러나도록 압력을 가했다. 다른 대학에서는 이 지시를 따랐지만 김 총장은 이를 거부해 총장직을 내놓게 됐다. 이런 강직한 성품의 그는 박정희 군사정권부터 항상 총리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교단을 떠나지 않고 참교육의 길을 걸었다.
●중국 내 한국학 연구 싹 틔워
그는 중국과 수교하기 전부터 중국과 가깝게 교류를 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고 중국 곳곳에 한국학 연구소를 세우는 등 중국 내 한국학 연구의 싹을 틔웠다. 한국공산권연구협의회장과 중국학회장 등을 지낸 그는 ‘중국공산당사’, ‘중국 최근세사’, ‘한국공산주의운동연구사’, ‘나와 중국’, ‘회고록 장정(長征)’ 등 저서를 남겼다.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 독립운동유공표창, 건국포장, 건국훈장 등을 받았으며 2009년에는 중국 주요 대학에 한국학연구소를 세우는 등 한국학 진흥에 이바지한 공로로 한국국제교류재단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민영주씨와 아들 홍규씨가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301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0일 오전 9시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2011-06-08 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