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가인권위, G20에 걸맞은 위상을/유시춘 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기고] 국가인권위, G20에 걸맞은 위상을/유시춘 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입력 2010-11-10 00:00
수정 2010-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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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조직은 현재 15부 2처 18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행안부의 기구표를 보면 맨 아래 작은 글씨로 독립위원회인 국가인권위가 꼬리처럼 매달려 있다. 이것이 바로 인권위의 독특한 위상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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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춘 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인권위에는 공공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단체의 간난신고와 무한경쟁사회의 낮은 곳에 거하는 이들의 구난처로서의 소망이 서려 있다. 설립 이후 10년 동안 의미 있는 많은 일을 했다. 국가권력이든 사적권력이든 집단은 늘 패권과 팽창을 추구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인권위는 이를 성찰하는 기구이다. 필자는 그래서 인권위를 국가권력의 ‘영혼’이라 칭하고 싶다.

한국의 인권위는 설립 이후 국제사회에 모범을 보여왔다. 필자가 재직하던 시절에 ‘경제동물’ 일본을 비롯해 여러 나라들이 우리를 벤치마킹하러 왔다. 이처럼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유엔도 칭찬하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기구였다. 1987년만 하더라도 경찰이 고문으로 대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하던 부끄러운 나라가 아니었던가. 실로 돌연변이적 인권 성장을 이룬 것이 자랑스럽다. 민주인권국가는 지구인이 추구하는 가장 보편적 가치임에 분명하다.

그런 인권위가 지금 신음하고 있다. 날개 찢겨진 어린 새처럼. 권능을 잃고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잃어가고 있다. 슬프고 부끄럽다. 두 상임위원의 사퇴, 밤늦게까지 노심초사하는 직원들의 항의는 단순히 합의제기구의 운영을 둘러싼 갈등과 알력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현정부 들어 인권위가 가진 숙명적·태생적 기능을 살피지 않고 대통령직속기구화하려던 시도가 있었다. 그리고 행안부의 무리한 조직 축소 강행 등이 그 배경에 있다.

지금 G20 정상회의가 시작되고 있다. 국민으로서 자랑스럽게 여긴다.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세계 10위권 경제교역국의 국가만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와 더불어 헌법이 보장한 공화국 국민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기를 원한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가 소외와 차별을 받지 않는 민주인권국가를 꿈꾼다. 이 소망에 대한 국가의 응답이 바로 국가인권위의 역할이다. 참여정부가 이라크 파병결정을 했을 때, 인권위는 반대성명을 발표했다. 우리 헌법은 침략전쟁을 반대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것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위의 소명은 바로 이런 데 있다. 국토해양부가 거대한 댐공사를 결정하면 환경부는 여러 측면에서 이를 반대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체제이다. 일사불란, 효율의 극대화만을 유일의 가치로 여기는 사고는 개발독재의 패러다임이다.

민주주의의 성숙도는 그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가 어떤 대접을 받는지 보면 알 수 있다. 현재의 인권위 파행은 현 정부의 인권의식 부재로부터 기인하는 면이 크다. 정부에 비판적인 사안을 애써 외면하고, 국민의 말할 권리에 눈 감는 인권위는 존재의 자기부정이다. 인권위의 모성적 손길이 보듬어야 할 구석은 아직 너무나 많다. ‘한겨울에 걸인 한 사람이 길거리에서 얼어 죽어도 그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되는, 도저히 불가능한 유토피아를 이상으로 삼을 수 있을 때라야 그 사회는 조금이라도 도덕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국가인권위, 설립취지를 되새겨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다시 국제사회의 모범이 되는 기구로 우뚝 서기를!
2010-11-1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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