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압류 급증 서민 두번 죽인다

보험금 압류 급증 서민 두번 죽인다

입력 2010-10-06 00:00
수정 2010-10-06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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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거라곤 몸뚱이 하나와 보험밖에 없는데 실손보험과 암보험 모두 압류됐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합니다.”

부산에서 일용직으로 하루하루 먹고 사는 김모(53)씨는 지난 8월 중순 배가 아파 병원을 찾았다가 진료비로 30만원을 지불했다. 김씨는 병원을 나오자마자 4년 전 들어두었던 실손보험을 통해 진료비를 지급받으려고 했지만 그 보험은 더 이상 김씨의 것이 아니었다. 실손보험은 물론이고 6년 전 가입했던 암보험까지 국세청에 압류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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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2000년 직원 20명을 둔 부품업체 사장이었던 김씨는 외환위기 이후 회사가 망하면서 2500만원의 국세를 내지 못했다. 김씨는 “세금을 계속 못내 지금은 3700만원까지 불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당시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빚을 갚아나가고 있으나 국세는 한꺼번에 내야 돼 평생 못 낼 상황인데 이제 보험금까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고 한숨지었다.

5일 금융감독원이 허태열(한나라당) 국회 정무위원장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 4~8월 5개 생명보험사가 법원과 국세청으로부터 압류를 요청받은 보험금은 월 평균 9307억원(1만 5348건)으로 2008회계연도 월 평균 1724억원(3402건)의 5.4배에 달했다. 올 4~8월 업체별 총액은 삼성생명이 4조 500억원(전체의 87%)으로 가장 많았고 교보생명 2902억원, 알리안츠생명 1253억원, 대한생명 1029억원, ING생명 848억원 순이었다.

보험금 압류 건수와 금액이 올해 대폭 증가한 이유에 대해 업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빚을 진 서민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부도가 늘고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법원과 국세청에서 압류를 요청한 금액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법원 판례도 법원과 국세청의 압류 요청을 증가시킨 원인으로 지목됐다. 지난해 6월23일 대법원에서 채권자가 유지되고 있는 채무자의 보험 계약에 대해서도 압류·해지해 채권추심을 할 수 있다는 판례가 나오면서 압류 건수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 판결 이후 대부업체나 카드사 등에서 적극적으로 채권추심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제는 보험금을 압류당하는 이들 대부분이 최저생활자에 가까운 상태로 마지막 희망까지 빼앗긴다는 점이다. 보험사 관계자는 “실제로 조사해 보면 보험금을 압류당하는 10명 중 9명은 돈이 한 푼도 없는 사람들”이라면서 “유지하고 있는 계약, 특히 저축성 보험이 아닌 납입액이 얼마 안 되는 보장성 보험까지 앗아가는 것은 일정부분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이 때문에 하나은행은 서민들의 최소 생활 유지를 위해 보험금에 대해서는 압류하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사적 채무관계에는 개입할 수 없더라도 금융기관이 최소한의 생활자를 걸러내는 등 자율적인 심사기준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경주·정서린기자 rin@seoul.co.kr
2010-10-0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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