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간 갑옷 입고 검 휘두르고… “여전사 ‘뮬란’ 되려고 모래폭풍도 견뎠어요”
‘목란사’(木蘭辭). 300여자로 이뤄진 작자 미상의 중국 고전 서사시다. 화목란(花木蘭)이라는 한 여인이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남장을 한 채 전쟁터에 나가 큰 공을 세운다는 내용이다. 중국판 잔다르크로 생각하면 쉽겠다. 1998년 미국 할리우드의 월트디즈니사가 이같은 내용의 애니메이션 ‘뮬란’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뮬란’이 실사 영화로 다시 만들어져 한국 팬들과 만난다. 오는 2일 개봉하는 ‘뮬란-전사의 귀환’이다. 중국-미국 합작으로 제작비 150억원이 투입됐다. 미모와 연기력, 인기를 겸비해 장쯔이(章子怡·31), 저우쉰(周迅·36), 류이페이(劉亦菲·23)와 더불어 중국 4대 천후(天后)로 꼽히는 자오웨이(趙薇·34)가 타이틀롤을 맡았다. TV드라마 ‘황제의 딸’(1997)을 시작으로 영화 ‘소림축구’(2002), ‘화피’, ‘적벽대전 1부’(이상 2008), ‘적벽대전 2부’(2009) 등으로 친숙한 배우다. 자오웨이와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최근 파경설 등 사생활에 대한 스캔들이 불거져 그녀는 인터뷰를 극도로 꺼렸다. 영화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조건으로 어렵사리 인터뷰가 성사됐다.자오웨이
→캐스팅 경쟁이 뜨거웠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러 배우들의 이름이 거론됐다. 그중 우연히 내게 기회가 온 거다. 처음엔 전설적이고 위대한 영웅인 그녀를 절대 연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촬영이 시작되자 자신감이 생겼다. 어려서부터 뮬란을 알았고 무척 존경했는데, 연기를 하면서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워낙 유명한 캐릭터라 연기하는데 부담이 있었을 듯싶은데.
-전설 속 인물을 연기한다는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실사 영화이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그녀의 존재를 실제처럼 생생하고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적벽대전’의 손상향 역할에 이어 ‘뮬란’에서도 여장부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적벽대전’ 캐릭터와 뮬란은 성격이 다르다. 뮬란 캐릭터를 완성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감정이입이 어렵고 혼란스러웠다. 기존 영웅과는 다른 특별함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갑옷을 입고 촬영장을 걸어가며 문득 깨닫게 됐다. 그녀가 외로운 캐릭터라는 것을. 키가 크지도, 힘이 세지도 않고 세심하고 부드러운 뮬란은 자신을 버린 외로움을 갖고 있다.
-옛날엔 여자가 전쟁에 나가는 게 불가능했지만, 요즘엔 많은 여성들이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나처럼. 중국 여성들은 모든 분야에서 일을 하고, 강하고, 독립적이다. 뮬란은 모든 여성들의 롤모델인 셈이다.
→무거운 갑옷을 입고 펼치는 액션 장면이 힘들지는 않았는지.
-처음에는 무척 버거웠지만 3개월 동안 입다 보니 익숙해져 애착이 생겼다. 촬영이 끝나고 갑옷을 갖고 싶어서 감독님을 조르기도 했다. 다만 촬영지인 중국 북서부 지역 날씨가 익숙지 않아 힘들었다. 입을 열면 모래가 들어왔다. 위험한 모래폭풍이 여러 차례 지나가 도망치기도 했다. 전투 장면을 찍고는 1시간은 꼬박 씻어야 모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게 힘들었던 점이다.
→남장 연기는 어렵지 않았나.
-사실 남장 연기는 무척 편하다. 메이크업과 헤어를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게 가장 좋았다(웃음). 어두운 파우더를 바르고 머리를 땋기만 하면 됐다. 뮬란은 자기 자신을 여자로 대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대하는 걸 원하지도 않았다. 나도 촬영 때는 여자라는 생각을 버렸다. 뮬란은 여전사라기보다 조금 다른 남자 같은 존재다. 다른 남자보다 조금 작고 섬세할 뿐이다. 오로지 나라와 아버지 같은 목표만 생각하는 인물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버지 몰래 군대에 가려고 처음 갑옷을 입은 뮬란이 말 위에 혼자 앉아 있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떤 스토리도 플롯도 없이 단지 혼자 서 있어야 했다. 나 스스로 혼자 견뎌내야 하는 장면이었다,
→뮬란이 구국의 영웅에서 일개 여성으로 돌아가는 극 중 장면이 아쉽지는 않았는지.
-12년 동안 나라와 동료를 위해 사랑을 쏟았으니 다시 아버지를 위해 시간을 가질 차례가 된 것이다. 여자로서 12년 동안 전쟁터를 지킨 것만으로도 뮬란은 정말 대단하고 용감한 사람이다.
→‘뮬란’ 이후 근황은.
-‘소림축구’에서 호흡을 맞췄던 저우싱츠(周星馳)와 얼마전 ‘구품참깨관’이라는 코미디 영화를 끝냈다. 그 외 여러 촬영을 준비하고 시나리오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느덧 서른 중반인데 연기자로서 바람이 있다면.
-늘 그때에 맞는 마음가짐에 따라 연기를 해왔다. 나이를 먹으며 감정의 폭도 점점 넓어졌다. 지금의 나이가 여배우로서 완벽한 때인 것 같다. 모든 감정적인 것들을 두루 갖춘 적당한 나이다. 어떠한 도전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상황과 나이가 색다른 연기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좋은 감독과 시나리오를, 나아가 좋은 관객을 만나는 게 앞으로의 바람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2010-08-31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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