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페리얼 크루즈】 제임스 브래들리 지음 프리뷰 펴냄
고종 “우리는 미국을 형님과 같은 나라라고 생각하오.”루스벨트 “일본이 반드시 대한제국을 지배했으면 좋겠소.”
우리 역사 속 통절한 비극의 한 장면이다. 당시 한국은 국제 정세에 철저히 무지했고, 제국주의적 침략 야욕의 실체를 깨닫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국과 일본의 밀약, 그리고 포츠머스 강화조약 두 달 뒤 1905년 11월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이 체결됐고, 1910년 일본은 한국을 강제로 병합했다. 그리고 꼬박 100년이 흘렀다.
1905년에 태평양과 대양을 누비던 맨추리어 호(왼쪽) 여객선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외교사절단을 싣고 아시아로 향했다.
1906년 3월 필리핀에서 미국이 자행한 모로 대학살현장(오른쪽).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600여명의 원주민을 학살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학살을 ‘성조기의 명예를 드높인 눈부신 무훈’이라 칭송했고, 마크 트웨인은 ‘기독교도 도살업자들이 저지른 도살행위’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1906년 3월 필리핀에서 미국이 자행한 모로 대학살현장(오른쪽).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600여명의 원주민을 학살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학살을 ‘성조기의 명예를 드높인 눈부신 무훈’이라 칭송했고, 마크 트웨인은 ‘기독교도 도살업자들이 저지른 도살행위’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훗날 루스벨트를 이어 27대 미 대통령이 되는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미 육군 장관을 단장으로 한 아시아 순방 외교사절단 80여명이 1905년 7월5일 샌프란시스코 항을 출발한 뒤 하와이, 일본, 필리핀, 중국, 한국을 거치는 여정을 담아냈다.
루스벨트는 이 순방단에 뉴스메이커인 천방지축 딸 앨리스를 태워 언론과 대중의 말초적 관심만을 유도하며 미국의 식민지 확대라는 비밀 임무를 감췄다. 그리고 순방단은 미국이 필리핀을 강점하는 과정에서 수십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선교사를 앞세워 하와이왕국을 강탈했으며, 조(朝)·미(美) 수호통상조약을 저버리고 일본의 침략과 강점을 용인하는 등 비밀 임무를 차곡차곡 수행했다.
역사는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는 이들에게만 칼 마르크스의 얘기처럼 ‘한 번은 비극(tragedy)으로, 한 번은 희극(farce)으로’ 반복될 뿐이다. 한국은 100년 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폭넓은 외교관계를 구축하고 있고 다양한 이해관계, 힘의 균형이 다원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일련의 외교 관계 움직임을 보면 100년 전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미국만 쳐다보는 우를 반복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게 한다.
최근 드라마, 소설 등을 통해 ‘한국의 은인이자 의인’으로 이미지화된 제중원 의사 호러스 알렌 공사가 사실은 루스벨트의 제국주의적 야욕의 구도 안에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내용도 책 속에 공개된다. 알렌 공사가 거의 대부분의 국책사업을 독점하고, 한국을 강점, 탄압한 일본을 지지하는 편지, 문서를 보내는 등의 활동을 했음을 감안하면 놀라울 것도 없다. 다만 이토록 당연한 역사적 사실조차 우리는 미화에 급급할 뿐이고 진실은 미국인이 쓴 책에서 봐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1만 68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10-08-14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