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킬러 인사이드 미’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킬러 인사이드 미’

입력 2010-07-06 00:00
수정 2010-07-06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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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 결말 앞에 길 잃은 성긴 플롯

짐 톰슨은 ‘킬링’, ‘영광의 길’의 각본을 쓰며 스탠리 큐브릭과 인연을 맺었다가 곧 버림받았다. 이처럼 톰슨과 할리우드의 관계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자기 파괴적인 패자의 정서, 알코올 중독은 그가 성공의 길을 걷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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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후 작가적 위치가 재조명되고, 스티븐 킹 등이 그를 최고의 작가로 추앙하고 있으나, 영화 작가로서 톰슨은 완전히 복권되지 않았다. 그의 소설을 제대로 영화화한 감독은 베르트랑 타베르니에와 스티븐 프리어스 정도에 불과하며, 거장 샘 페킨파조차 ‘겟 어웨이’에 스스로 만족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톰슨의 소설과 오랜만에 랑데부한 사람은 영국 출신인 마이클 윈터바텀이다. 유럽인과 만났을 때 더 성공을 거둔 전례를 지켰을까, 첫 번째 관심사는 바로 그것이다.

‘킬러 인사이드 미’의 배경은 미국 텍사스 서부의 작은 마을이다. 부보안관인 루(케이시 애플렉)는 마을 외곽에서 영업 중인 창녀를 처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매혹적인 창녀 조이스(제시카 알바)와의 만남은 루가 10년 넘게 억누른 살인의 본능을 자극한다.

마을의 여선생과 연인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루가 조이스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마을의 실권자인 건설회사 사장 아들이 조이스와 사랑에 빠지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마을 사람들이 믿고 의지하는, 상냥한 표정의 루는 주변 사람들을 하나둘씩 끔찍하게 죽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어두운 과거와 불순한 내면을 모르는 사람들은 살인범과 살인 동기를 선뜻 연결짓지 못한다.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원작에서 루는 ‘당신이 궁금해할 여지는 남기지 않겠다. 당신에게 모든 것을 말할 것이다.’라고 독백한다. 1976년에 ‘킬러 인사이드 미’를 첫 번째로 영화화한 버트 케네디는 희랍 비극의 요소와 어두운 심리극으로 톰슨의 의도에 접근했는데, 윈터바텀은 케네디가 실패한 지점을 반복하지 않는다.

윈터바텀은 원작의 인물 구성과 사건 전개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유독 루의 심리는 증발시킨다. 레즈비언 연쇄살인범과의 쓰디쓴 여정을 담담히 고백하는 여성의 표정을 그린 초기작 ‘버터플라이 키스’처럼, ‘킬러 인사이드 미’는 1950년대 오일타운의 비극을 상반된 풍경 아래 이미지화하는 데 주력한다.

이건 이상한 노선이다. 사건만 남겨두고 심연의 고백을 제거하면 혼란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킬러 인사이드 미’의 성긴 플롯은 하워드 혹스의 ‘빅 슬립’과 유사하고, 난폭한 결말은 로버트 알드리치의 ‘키스 미 데들리’를 빼닮았다. 관객은 인물과 함께 사건 주변을 맴돌다 폭력적 결말 앞에서 아예 길을 잃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세 영화 사이에 존재하는 50여년의 시간뿐이다. 윈터바텀은 미국의 형세와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에 대해 아는 척하거나 단정하거나 친절히 설명하기를 거부한다. 대신 명민한 누군가가 선명한 이미지 위로 코를 킁킁거리며 시대와 공간을 읽어내기를 원한다. ‘킬러 인사이드 미’를 본다는 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 심리를 드러내지 않은 인물과 말끔하고 모던한 풍경 이면의 불편한 그림자, 윈터바텀에게 비친 1950년대(그리고 2010년)의 미국은 그런 모습이었나 보다.

영화평론가
2010-07-0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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