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남자들’ 웃고 ‘웃기는 남자들’ 울고

‘나쁜 남자들’ 웃고 ‘웃기는 남자들’ 울고

입력 2010-06-29 00:00
수정 2010-06-29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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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방송계 결산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시청률이라고 하지만 2010년 상반기 방송가는 어느 때보다 예상치 못한 반전이 많이 터져나왔다. 새로움을 주지 못하고 기존의 흥행 공식만을 답습한 경우는 여지없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시청률 보증수표로 인식된 톱스타도, 전편의 화려한 명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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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거듭한 안방극장

신년 벽두부터 안방극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KBS 수목 미니시리즈 ‘추노’. 톱스타들이 나오거나 기존의 궁중사극도 아니었지만 노비를 주인공으로 한 ‘길거리 사극’이 오히려 신선함을 줬다. 특히 ‘추노’는 ‘다모’의 계보를 잇는 스타일리시 사극으로 명품 대접을 받았다.

영화용 카메라로 촬영한 세련된 영상미와 화끈한 액션은 모처럼만에 남성 시청자를 TV 앞으로 끌어당겼고, 구릿빛 피부에 탄탄한 복근을 자랑하는 ‘추노꾼’들은 여심까지 사로잡았다.

거센 남자들의 질주는 ‘나쁜 남자’ 신드롬으로 이어졌다. MBC 월화드라마 ‘파스타’의 주인공 이선균은 까칠하고 마초적인 셰프 최현욱 역을 맡아 극 초반의 ‘비호감’ 위기를 극복하고 일과 연애에 카리스마까지 있는 남자로 뒷심을 발휘했다.

‘선덕여왕’ 이후 주도권 경쟁이 치열하던 월화극에서는 KBS ‘공부의 신’이 의외의 안타를 쳤다.

꼴찌들의 명문대 입학기를 다룬 이 작품은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와 1등 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공부 비법’ 전수라는 실용적(?)인 소재로 10대 학생과 40대 학부모의 인기를 동시에 누렸다.

수목극 시장에서도 반전은 계속됐다. KBS ‘신데렐라 언니’는 해당 방송사에서도 흥행을 자신하지 못했으나 문학적인 대사와 섬세한 심리 묘사라는 아날로그적 가치를 되새기며, 화려한 스케일과 빠른 전개에 매몰되는 듯했던 TV 드라마에 급제동을 걸었다.

제목부터 노골적인 SBS 수목극 ‘나쁜 남자’는 극 초반 김남길, 한가인 등 스타 이름값에 의존하는 모양새를 보였으나 회를 거듭할수록 고정팬을 늘려가고 있다.

상반기를 마감할 즈음, SBS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도 동성애 코드를 전면에 내세우며 보수적인 안방극장에 파란을 일으켰다.

●‘내우외환’ 시달린 예능프로

반면 예능 프로그램은 그 어느 때보다 정치·사회적 이슈로 얼룩졌다. 천안함 사태, 방송사 파업, 정치권 외압 등으로 장기 결방되거나 폐지되는 프로그램이 많아 웃음의 본질적 의미에서부터 예능 프로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프로그램 형식 면에서는 몇 년째 이어진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강세가 계속됐다. KBS ‘해피선데이’의 ‘1박2일’은 예능프로그램으로는 드물게 시청률 40%를 돌파했고, 평균 나이 40.6세 아저씨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남자의 자격’ 역시 방영 1주 만에 시청률 20%를 돌파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소리없이 사라진 프로그램도 많았다. 천안함 사태로 인한 TV 예능프로의 잦은 결방은 시청률 하락으로 이어져 자연스럽게 폐지 수순을 밟았다. SBS ‘골미다(골드 미스가 간다)’, ‘절친노트’, MBC ‘하땅사(하늘도 웃고 땅도 웃고 사람도 웃고)’ 등이 대표적이다. KBS ‘상상 더하기’나 ‘달콤한 밤’처럼 비슷한 형식을 반복하다 식상함을 이유로 ‘구조조정’ 대상이 된 경우도 있었다.

예능과는 별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정치적 외압설도 상반기 방송가를 뜨겁게 달궜다.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추도식 사회를 본 방송인 김제동은 한 케이블 방송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 녹화까지 마쳤으나 끝내 전파를 타지 못한 채 자리에서 물러났고, 국회에서 대사가 부적절하다고 지적을 받은 KBS 2TV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도 결국 폐지됐다. 물론 해당 방송사는 외압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지만 시청자들에게 남긴 것은 ‘씁쓸한 미소’였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2010-06-29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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