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희경 경제부 기자
뒤집어 보며 풍경보다는 한옥이, 집보다는 사람 얼굴이 더 괴상해 보인다는 걸 알았다. 웃는 표정, 우는 표정, 화난 표정 등이 새롭게 다가왔다. 돌려서 봐도 몸짱 옥택연 팔뚝은 여전히 멋있구나 하는 생각도 곁들였다. 잠시 눈에 보이는 화면을 뒤집었을 뿐인데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흘렀다.
몸을 뒤집어서 TV를 보겠다는 생각을 스스로 한 건 아니다. KAIST 바이오 뇌공학과 이광형 미래산업 석좌교수가 제안한 ‘TV 거꾸로 보기’를 약식으로 실행했을 뿐이다. 그는 KAIST 내 휴식공간에 TV를 거꾸로 매달아 놓기도 했다. TV를 아예 뒤집어 봄으로써 머릿속에 있는 1000억개의 뇌세포 연결 통로가 바뀌고, 습관이 새로운 생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한다.
거꾸로 보기뿐 아니라 늦게 끼워 넣던 발부터 바지 입기, 왼손 젓가락질 같은 전환이 모두 뇌에 자극을 줄 수 있단다. 물론 왼발로 자동차 가속페달 밟기와 같은 행동은 자제해야겠다. 뇌 자극보다 생존이 중요하니까….
어떤 큰 감동을 받아서 TV 거꾸로 보기를 시도한 것은 아니다. 재미있을 것 같아 물구나무를 서 봤고, 그랬더니 생각 못한 신세계가 다가왔다.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새로운 깨달음으로 이어진 경우다.
조앤 롤링은 전환의 묘미를 일찍 터득한 작가인 듯하다. 평생 유일하게 밤을 꼬박 새우면서 읽은 책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가장 매혹적이었던 주문은 ‘리디큘러스’. 자신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에게 이 주문을 쓰면 그 무섭던 존재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바뀌고 만다.
죽음을 부르는 ‘아브라카다브라’ 주문을 외는 마왕에게 대적시키기 위한 첫 수업에서 미성년 마법사들에게 가르치는 ‘리디큘러스’ 주문은 의미심장하다. 무서운 것을 우스운 것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세상엔 무서울 게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뒤집어서 보거나 할 일을 찾게 될 것 같다. 뒤집는 일을 뒤집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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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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