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석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정부 정책에서 전적으로 그른 것과 옳은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각각 나름의 합리성이 있으며, 그런 만큼 제각각 이득과 손실도 있다. 결국 이 둘을 잘 가늠해서 보다 나은 방안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정책 결정 과정이다. 그러나 이득과 손실 계산 단계에서부터 특정한 의도가 강하게 개입되면, 합리적인 정책 결정은 아예 불가능해진다. 작금의 상황이 딱 그 꼴이다.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정책일수록 객관적인 근거가 중요하다. 객관적인 근거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일반의 상식을 기준으로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것이면 족하다. 이런 기준으로 영리의료법인의 이득과 손실을 다시 한번 짚어보자.
첫째, 영리의료법인이 허용되면, 의료서비스의 비용이 낮아지는가? 그렇지 않다. 영리의료법인 허용의 주된 목적은 고급의료와 차별화된 의료서비스에 있다. 이런 서비스를 활성화하면서 동시에 비용이 낮아진다는 주장은 상식에 맞지 않다.
둘째, 의료서비스의 질이 향상될 것인가? 부분적으로 그렇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데 따르는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이 이득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능력을 갖춘 계층에 국한된다. 게다가 미국 등에서는 영리의료법인에서 제공하는 의료 관련 서비스의 질이 일반 병원에 비해 오히려 더 낮다는 연구보고도 많다. 수익 증대를 위해 서비스 생산 비용을 무리하게 줄이기 때문이다.
셋째, 의료 불형평성이 심화될 것인가? 그렇다. 의료자원이 고수익을 보장하는 영리의료법인으로 쏠릴 경우, 계층간 불형평성이 심화될 수 있다.
넷째, 병원산업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영리건 비영리건 간에 의료기관이 늘어나면, 일자리는 늘어난다. 일자리 창출은 영리의료법인의 고유한 효과가 아니다.
다섯째, 의료기관으로 유입되는 자본 규모를 늘릴 것인가? 불확실하다. 영리법인이 허용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이미 의료기관이 세계 최고 속도로 증가(매년 2000여 곳, 2만 7000여 병상)하고 있고, 고가 의료장비 보유율도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료과잉 상태에서 자본을 더 투입하는 것이 타당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여섯째, 영리법인이라야 해외환자를 유치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전 세계에서 환자를 유치하고 있는 미국 유수의 병원들은 대부분 비영리법인이다. 지금도 국내 병원들이 비영리법인이라서 해외환자 진료를 못하는 건 아니다.
이런 손익계산을 과연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영리의료법인 도입반대 의견이 찬성의 2배에 달한다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답이 있다. 적어도 현 단계에서는 영리법인 추진 중단이 국민의 여론과 상식에 부합하는 자세이다. 정부, 특히 기획재정부는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은 ‘방기곡경(旁岐曲逕)’의 참뜻을 되새겨야 한다.
질문 하나 더, 영리의료법인 허용이 ‘친서민 정책’인가? 그렇지 않다.
이진석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2009-12-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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