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사극 성공신화… 역사왜곡 비판도
MBC 월화 드라마 ‘선덕여왕’이 22일 62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최고 시청률 44.9%(TNS 미디어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국민 드라마’ 반열에 올랐다. 숱한 화제와 무성한 뒷얘기 가운데 굵직한 5가지를 추려 봤다.●여성사극 새 지평 열다
선덕여왕이 지상파 방송 3사를 통틀어 한국 드라마사(史)에 남긴 가장 큰 족적은 ‘여성 사극은 안 된다.’는 방송가의 불문율을 깬 점이다.
그간 사극은 남성 영웅 중심이었다. ‘불멸의 이순신’, ‘대왕세종’, ‘연개소문’, ‘주몽’ 등이 대표적 예다. 남성 사극에서의 여성은 비극적 사랑의 대상이 대부분이었다. 더러 권력의 중심에 자리잡더라도 장녹수, 장희빈 등 ‘팜므파탈’(악녀) 캐릭터로 한정되기 일쑤였다.
반면 선덕여왕은 한국 최초의 여왕(女王)인 덕만(이요원 분)과 그의 정적 미실(고현정 분)을 중심 축에 놓고 두 여성의 권력 투쟁을 그려 나갔다. 덕만의 쌍둥이 언니 천명공주(박예진 분)도 극의 동력에 힘을 보탰다.
덕분에 선덕여왕은 불문율 파괴와 더불어 2007년 ‘주몽’(51.9%) 이래 2년 만에 최고 시청률을 MBC에 안겨 주었다. 안팎 시련이 컸던 MBC로서는 ‘구세주’를 만난 격이다.
경쟁사들은 드라마(SBS ‘천사의 유혹’) 편성시간을 한 시간 앞당겼을 정도로 선덕여왕 앞에 고개를 숙였음은 물론이다.
‘미실 어록’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은 능력이 모자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부주의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사람은 그럴 수 없습니다.” “백성은 진실을 부담스러워하고 희망을 버거워하며 소통을 귀찮아하고 자유를 주면 망설입니다.” “사랑이란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다.” 네티즌들은 이같은 미실의 명(名)대사를 따로 편집해 돌려보고 있다.
선덕여왕은 젊은 스타도 대거 배출했다. ‘비담’ 역의 김남길은 2003년 공채 탤런트로 데뷔, 인지도가 낮은 배우였지만 선덕여왕을 통해 절정의 인기를 누렸으며,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알천’ 역의 이승효와 ‘월야’ 역의 주상욱도 주가를 높였다. ‘유신’역의 엄태웅도 큰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F4’(꽃미남 4인)로 불리며 드라마 방영 내내 팬들을 몰고 다녔다.
●힘빠진 ‘포스트 미실’ 한계도
하지만 인기만큼이나 ‘역사 왜곡’의 꼬리표도 따라다녔다. 태생적 한계라는 지적도 있다. 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역사서 ‘화랑세기’가 필사본(인쇄물이 아닌 손으로 쓴 책)인 탓에 진위논란을 몰고 다니기 때문이다.
실존인물로서의 미실 존재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진흥왕의 애첩이었던 미실이 진흥왕의 증손녀인 선덕여왕과 오랜 기간 권력 투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비담이 미실의 아들이란 설정도 역사적 고증이 되지 않은 대목이다. 제작진은 “드라마적 재미를 위해 상상력이 가미된 허구를 어느 정도 용인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이 때문에 사극에서의 역사와 허구 경계 논란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연장 방송에 대한 비난도 거셌다. 당초 50회였던 선덕여왕은 높은 시청률로 12회나 연장됐다. 비담, 설원(전노민), 문노(정호빈) 등 인기 캐릭터들의 퇴장도 늦춰져 내용이 계속 수정됐다. ‘극이 늘어진다.’는 비난에 직면한 이유 중 하나다.
미실의 퇴장 뒤에 남겨진 캐릭터들이 그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점도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드라마의 중심 축인 선덕여왕과 미실의 대결구도가 사라지면서 힘이 빠져버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면서 “그렇더라도 ‘포스트 미실’에 대비한 극적 갈등 설정이 다소 부실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평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2009-12-23 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