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원
●“꽃미남’ 거품 걷어내니 더 편안해”
국내 대중문화계에 ‘꽃미남’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강동원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땐 많은 분들이 좋아해줘서 고마웠지만, 돌아서면 머리가 확 차가워졌어요. ‘과연 언제까지 나를 좋아해줄까.’하는 의문도 들고, 거품이란 걱정이 앞섰죠. 그래서 지금이 훨씬 더 편해요.”
지난 17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앉은 강동원에게선 더 이상 꽃미남 스타의 이미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순정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외모는 여전하지만 강한 경상도 억양으로 그동안 작품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는 모습에서 데뷔 7년차 배우의 근성이 느껴졌다.
“그동안 남들이 제게 기대하는 이미지보다 새롭고 재밌는 것에 도전하는 것을 즐겼던 것 같아요. 이 때문에 코미디, 멜로 장르 이후엔 좀 어둡고 진지한 역할이 많았죠. 사형수로 출연했던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후엔 한동안 그 역할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감정적 소모가 컸어요.”
스스로 고정관념을 뒤엎는 것을 즐기는 ‘삐딱이’ 성격을 지녔다는 그는 대중보다 감독들이 더 사랑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놈 목소리’의 박진표 감독은 새로운 면을 찾아주겠다며 발벗고 나섰고, 20년이 넘는 나이차에도 그를 ‘친구’라고 부르는 이명세 감독은 ‘형사’, ‘M’에 연이어 출연시켰다. 올 연말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는 ‘전우치’(23일 개봉)도 2007년 여름 ‘타짜’, ‘범죄의 재구성’의 최동훈 감독이 처음부터 강동원을 염두에 두고 만든 영화다.
●천방지축,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전우치 열연
“나중에 감독님께 들으니 제 등이 맘에 드셨다고 하더라구요.(웃음) 체격에 비해 어깨가 넓은 편이라나요. 저도 솔직히 이번엔 신나고,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는 캐릭터를 해보고 싶었어요. 영화 ‘M’ 말곤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한 작품은 없었는데, 줄곧 흥행작이 없다는 평가도 좀 억울했구요.”
이처럼 그가 “작정하고” 덤볐다는 오락 영화 ‘전우치’는 500년 전 그림 족자에 갇혔던 도사 전우치(강동원)가 초랭이(유해진)와 함께 2009년 서울에 나타난 요괴들에 대적하는 활약상을 그린 코믹 액션물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능청스럽고 익살스런 코믹 연기로 한국형 액션 히어로 전우치의 이미지를 잘 살렸다.
“준비한 기간이 길어서인지 대사 리듬이나 감정 표현, 현장 적응력 등 모든 것에 자신감이 붙었어요. 워낙 보여줄 것이 많은 캐릭터이기도 했구요. 개인적으로는 닫혀있는 연기보다 풀어지는 역할이 훨씬 쉬웠어요. 대본엔 좀 얄밉고 건방진 천재 도사로 그려지지만, 나사를 하나 빼고 쉽게 다가가는데 가장 중점을 뒀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이 작품에서 큰 키를 이용한 화려한 무술 실력과 와이어(쇠줄) 액션을 선보였다. 영화에서 절반 이상 공중을 떠다니다보니 거의 매일 지름 4~5㎜의 와이어에 매달려, 높게는 30층 건물의 옥상 난간에서 연기를 펼쳤다.
“와이어는 위험할 땐 두 줄을 매주지만 시간에 쫓기면 한 줄만 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도 많아요. 나중엔 보호대도 없이 계속 떨어지는 지점이 높아져 저도 모르게 화를 낸 적도 있습니다.”
●와이어 연기에 생명 위협도… 멜로 연기는 다음에
‘전우치’는 제작비 150억원이 투입된 올해 마지막 국내 블록버스터다.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 서양의 슈퍼 히어로에 맞서 동양적 매력을 갖춘 영웅 캐릭터로 속편 시리즈 제작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전우치’는 기존의 정의로운 히어로가 아닌 뻔뻔하고 천방지축 캐릭터라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속편이 제작된다면 출연해 못다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어요.”
2년여의 긴 공백을 가졌던 그는 연말연시 관객들과 쉼없이 만난 뒤 내년에 군에 입대할 예정이다. 앞으로의 가장 큰 바람은 슬럼프 없이 ‘하던 대로’ 맡은 배역에 충실하는 것. “영화 ‘M’을 찍을때 소속사 문제 등 외부적인 문제들로 배우 생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어요. 그런 고민때문에 자주 밖으로 나올 기회는 적었지만, 결코 신비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팬서비스로 멜로 영화에 다시 출연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아직은….”이라며 웃는 강동원. 당분간 영화 속에서 그의 ‘살인 미소’를 볼 수는 없겠지만, 배우로서 성장하는 그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을 것 같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2009-12-22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