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재일 한국인과 일본 지방참정권/박홍기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재일 한국인과 일본 지방참정권/박홍기 도쿄특파원

입력 2009-10-24 12:00
업데이트 2009-10-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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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기 사회부장
박홍기 사회부장
일본 보수우익들의 준동이 시작됐다. 10월 들어 본격적이다. 자신들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정권을 빼앗아 뒤엎은 민주당을 겨냥한 발호다. 지난 3일 거리선전에 나서더니 지난 17일엔 집회도 가졌다. 1400명이 집결, 국회 앞까지 행진하며 “어느 나라 정당이냐?”고 목청을 돋웠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화상 메시지로 분위기를 띄웠다. 다음달 14일 다시 모일 작정이다.

문제는 보수우익들의 정치적 반격으로만 봐 넘길 수 없다는 점이다. 초점이 ‘외국인 지방참정권 부여 반대’에 맞춰진 까닭에서다. 역사와 전통을 깨는 데다 화를 자초할 ‘괴물’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요미우리신문과 산케이신문 같은 보수우익지들까지 가세하고 나섰다.

민주당 정권이 지방참정권의 틀을 짜 나갈수록 보수우익들의 기승이 한층 심해질 것은 뻔하다. 민주당은 1998년 결당 때 기본정책에 외국인 지방참정권 실현을 내걸었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 등 내각과 당의 핵심 멤버들이 지방참정권 추진파이다. 오카다 가쓰야 외무상은 지난해 1월 “이 문제는 민주당의 비원(悲願)이다.”라고 규정했다.

지방참정권 행사는 재일 한국인, 특히 특별영주권자들의 숙원이다. 일제 강점과 맞닿아 있다. 특별영주권자들은 강점 시기에 강제로 또는 스스로 일본에 정착한 한국인들이다. ‘일본인’으로 취급당하다 패전 이후 ‘외국인’으로 내쳐졌다. 역사의 피해자다. 법무성의 통계에 보면 특별영주권자는 자녀들까지 포함, 남북 구분 없이 42만여명에 이른다. 각국의 일반영주권자는 49만명 정도다.

특별영주권자들의 요구는 간명하다. 납세 의무를 다하며 지역 발전에 힘쓰는 주민으로서 지역 대표자의 선출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요청한 것이다. 국정선거권을 욕심내는 게 아니다. 참정권도 피선거권이 아닌 투표권만이다. 패전 이후 60년 이상 삶의 터를 일궈온 외국인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인 셈이다. 법적 근거도 갖췄다. 1995년 2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싸워 최고재판소로부터 ‘헌법상 금지돼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가입법 정책에 해당하는 사항”이라는 판결을 이끌어 냈다. 판결을 기준으로 삼더라도 15년간 계속된 투쟁이다.

그러나 보수우익들의 반발은 집요하고도 거세다. 꽉 막힌 원리주의자 같다. 참정권을 갖는 유일한 수단으로 귀화만을 종용하고 있다. 한국에서 2005년 영주 외국인들에게 지방참정권을 인정하자 한때 내세웠던 상호주의 원칙도 거둬들였다. 대신 한국과는 영주 외국인수의 차이가 커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억지 논리를 만들었다. 이중 선거권도 들먹이고 있다. 지방참정권을 주면 한국에서는 국정선거권을 가진 만큼 양국에서 선거권을 행사한다는 주장이다. 얼토당토않다. 주민의 22%가량이 한국인인 오사카 이쿠노(生野)구와 같은 생활근거지도 트집의 대상이다. 심지어 국가 안보가 위험에 처했을 때 군사기지, 원자력시설 등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차별적인 음해성 발언도 서슴지 않는 실정이다. 피해의식이나 다름없다.

하토야마 총리는 지난 9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적극적으로 결론을 도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 정서, 감정이 아직 통일돼 있지 않다.”고 솔직히 밝혔다. 보수우익의 반발은 언제든 넘어야 할 과제다. 세계 40개국이 영주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주고 있다. 흐름이다. 주요 선진 7개국 가운데 영주 외국인의 참정권이 없는 국가는 일본뿐이다. 지방참정권 인정 문제는 민주당 정권의 몫이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닫힌 섬나라가 아닌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는 열린 국가임을 내보일 수 있는 또 다른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또 한·일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이기도 하다.

박홍기 도쿄특파원 hkpark@seoul.co.kr
2009-10-2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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