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유혈은 판타지일 뿐… 현실에선 젠틀”

“영화속 유혈은 판타지일 뿐… 현실에선 젠틀”

입력 2009-10-14 12:00
수정 2009-10-14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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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는 피를 싫어해요. 손에서 조금만 피가 나와도 끔찍하죠. 공포영화를 만들지만 현실에서는 젠틀해요. 친구 관계도 좋아요.”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이탈리아 ‘공포영화의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67) 감독은 “젠틀하다.”는 말에 힘을 줬다. “영화 속에서 피의 축제를 벌이는 건 판타지를 그리는 것일 뿐”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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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 사무국 제공
부산영화제 사무국 제공


●‘수정 깃털의 새’ 등 5편 상영

부산국제영화제는 특별전에서 ‘보이지 않는 것의 진실:다리오 아르젠토의 지알로 걸작선’을 마련했다. 아르젠토의 작품 가운데 지알로 장르에 속하는 ‘수정 깃털의 새’(1969년), ‘딥 레드’(1975년), ‘지알로’(2008년) 등 5편을 준비했다.

여기서 ‘지알로’란 이탈리아어로 ‘노란색’을 뜻하는데, 1960년대 생겨난 이탈리아 호러 스릴러를 가리킨다. 보통 일반인이 뜻하지 않게 범죄 장면을 목격한 뒤 살인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살인마의 검은 코트와 장갑, 젊은 여성이 난자당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번에 상영되는 아르젠토의 영화들은 지알로의 공식을 완벽히 구현한 걸작들로 평가받는다.

다리오 아르젠토는 평론가와 각본가로 활동하다 1969년 ‘수정 깃털의 새’를 만들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브라이언 드 팔마, 로버트 로드리게즈 등 많은 유명 감독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그라인드하우스’(2007년)에서 ‘수정 깃털의 새’의 주제음악을 쓰기도 했다.

이런 현상에 대한 아르젠토의 소견은 “다 괜찮게 생각한다.”였다. “제 영화의 영향을 받거나 모방하는 것은 결국은 현실을 모방하는 것과 같아요. 사실 모든 현실은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가 보는 현실은 결국 영화가 보여 주는 현실과 같다고 할 수 있어요. 저도 독일 표현주의에서 영향을 받았죠.”

지난해 미국에서 제작된 ‘지알로’는 지알로가 제목이자 주인공 이름으로 쓰인다.

이에 대해 아르젠토는 “지알로 자체가 아이러니한 장르다. 그런 아이러니의 표현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또 ‘지알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의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다. 아르젠토는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이었지만, 시나리오·연출을 함께 맡는 데 익숙해 있어서 앞으론 다시 내가 시나리오를 쓸 것 같다.”고 말했다.

●독일 표현주의에서 영향받아

그는 왜 하필 공포영화를 찍게 됐을까.

아르젠토는 “지알로만 만든 건 아니다. 호러, 판타지 등 여러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 왔고, 최신작 ‘지알로’는 사실주의에 가까운 영화이기도 하다.”면서도 “공포영화를 찍게 된 건 주변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고 전했다.

“어렸을 때 지알로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그때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아버지가 제작자, 어머니가 사진 작가인 예술가 집안에서 자랐는데, 모두들 제가 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작가영화를 찍으리라 예상했죠. 하지만 저는 그런 기대에 반하게도 판타지를 영화화했어요.”

●영화속 ‘살인마 손’은 자신의 손

흥미로운 사실은 아르젠토 영화에 나오는 검은 장갑을 낀 살인마의 손은 모두 아르젠토 자신의 손이라는 점이다.

이유가 재밌다. “첫 작품인 ‘수정 깃털의 새’가 저예산이어서 손이 나오는 몇 장면을 위해 따로 배우를 섭외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손 연기를 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계속하게 됐어요.”

부산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2009-10-1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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