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사건에 비친 우리사회]<하>찌라시의 사회학

[장자연 사건에 비친 우리사회]<하>찌라시의 사회학

입력 2009-04-01 00:00
수정 2009-04-0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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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불신이 낳은 ‘권력없는 자들의 관음증’

한동안 각종 포털사이트는 여기저기 올라오는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를 삭제하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네티즌들이 고(故) 장자연씨에게서 성접대를 받은 의혹을 받고 있는 유력 인사들의 실명을 거론한 추측성 글을 퍼날랐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장씨 사건은 불행한 사건의 진실규명이라는 본질을 떠나 말초적인 흥밋거리로 치닫는 등 점점 게임의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네티즌들은 리스트에 어떤 유력 인사가 들어있을지에 관심이 더 많다. ‘피핑 톰(Peeping Tom·몰래 엿보는 사람)’의 등장이다.

통상 당사자들이 특정인을 대상으로 고소·고발한 사건은 다르지만 항간에 떠돌아다니는 리스트는 ‘찌라시(사설 정보지)’ 문화와 무관치 않다. 사설 정보지는 사설업체들이 시중에 떠도는 각종 정보를 취합해 돈을 받고 증권가 등에 유포한다. 경찰은 “시중에 떠도는 찌라시와 실제 수사 대상은 20~30%밖에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사설 정보지의 무차별적인 살포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온라인에서 ‘찌라시’는 기성 언론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대안 언론’의 구실을 한다. 대중문화평론가 김종휘씨는 “정보가 넘쳐날수록 관건은 에디팅(편집)인데, 기존 언론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찌라시에 의존하게 된다.”고 짚었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찌라시 문화에는 분명 사회적 관음증이란 병리 현상이 있지만 장씨 사건의 경우 경찰의 미진한 수사와 권력층의 배후설과 같은 소문이 합쳐지면서 찌라시에 관심이 몰린 것이라 단순한 사회적 관음증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같은 관음증이라도 구분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관음증은 ‘권력 없는 자들의 관음증’이라는 것이다. 원 교수는 “공권력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리스트의 내용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을 비판하기보다 권력층에 대한 견제가 되지 않는 사회구조를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씨를 자살로 몰고 간 후진적 연예사업과 남성 중심적 문화에 대한 비판 없이 무조건 ‘리스트’에만 집착하는 말초적 호기심은 문제다.

하지만 리스트 자체의 폐단을 감안하더라도 가해자가 누구인지 따져 물을 정도의 문제 제기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명호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 연예인이 죽었고, 죽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혔다. 이를 궁금해하는 것을 남의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민희 오달란기자 har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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