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宗家 제사상에 멜론 올라

퇴계 宗家 제사상에 멜론 올라

입력 2009-03-07 00:00
수정 2009-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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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관혼상제는

관혼상제가 흔들리고 있다. ‘관습’이라 여기며 누구나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잘 따르던 의례들도 원형이 하나둘씩 변해가고 있다. 우리 고유의 문화가 변화 속도를 따르지 못해 생기는 ‘문화적 지체현상’ 때문에 관혼상제 문화에 심각한 위기가 다가온 것이다.

관혼상제와 관련된 의식이 변화되고 있는 원인은 종교, 문화 등 여러 분야에 복잡하게 얽혀 있어 분석하기가 쉽지 않다. 중앙대 민속학과 임장혁 교수는 “관혼상제는 조선시대에만 해도 특정 계층에 한정돼 있는 고급 문화였다.”면서 “특정 계층의 문화에 대한 욕구가 이런 문화를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게 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하지만 지난 40~50년간 서양식 결혼·매장 문화가 많이 유입돼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면서 “종교적인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서구 기독교의 영향으로 제사를 등한시하게 된 영향이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또 “오늘날 관혼상제는 문화가 아닌 소비의 가치로 여겨지고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고 덧붙였다.

노인이 이러한 급격한 변화에 역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부장적인 가족 문화가 붕괴되고 경제력이 가장 큰 영향을 발휘하게 되면서 가정 안에서 노인의 발언권은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노인이 주눅들지 않고 가족 구성원의 책임감을 북돋우는 동시에 관혼상제를 ‘만남의 장’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임 교수는 “노인이 가족 구성원의 책임감을 이끌어 내야 관혼상제의 본질적인 가치를 지켜 나갈 수 있다.”면서 “또 관혼상제를 먼 친척들과의 ‘만남의 장’으로 승화시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면 본질적인 의미를 희석시키지 않고 전통을 지켜 나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외형적인 변화에 집착하지 말고 문화적인 가치를 계승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외형보다 유교적 가치 자체에 치중하는 풍조가 확산되면서 지난해 퇴계 이황 선생의 종가에서는 제사상에 ‘멜론’을 올리기도 했다.

성균관 방동민 기획부장은 “세계화 시대에 관혼상제의 변화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면서 “바쁜 현대인들에게 지나치게 외형적인 모습만 고집하는 것도 문화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위치에 맞는 책임감을 갖고, 진정성 있는 마음자세로 정신적 가치를 계승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경기 침체로 생업에 찬바람이 부는 지금 관혼상제가 사회적 짐이 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2009-03-07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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