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신사 합사취하’ 소송 이희자씨 법정서 눈물
“억울하게 일제의 제삿밥을 먹고 계신 아버지 넋의 한을 언제나 풀어드릴 수 있을지….”“아버지 자식으로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는 게 제 인생에 남은 과제고 소원입니다. 바로 제 아버지 이름을 야스쿠니 신사에서 빼는 것입니다.”
일제시대 강제징용된 뒤 생사여부도 끊어진 아버지를 찾아 헤맨 지 올해로 20년째. 이씨는 1997년에야 중국 광시성 유장(柳江)현 전투 중 사망한 아버지 이사현씨가 야스쿠니 신사에 합장돼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아냈다. 2002년 소송을 시작했지만 2006년 5월 재판부는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240여만명의 일본인 이외에 2만 1000여명으로 추정되는 한국인 위패가 모셔져 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일본은 유족들에게 사망통지를 하거나 위패 봉안 사실을 알린 적이 없다. 생존자 중 엉뚱하게 합사돼 있는 이들 숫자는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합사는 합당한 의무였다고 주장한다.
이씨가 그동안 합사 철폐를 위해 현해탄을 오간 횟수만 90여차례. 3·1운동 90주년을 맞는 올해지만 애끓는 심정은 여전하다. 그는 “금전적 보상이 중요한 게 아니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협정때 보상은 모두 끝났다고 외면하지만 유족들 입장에선 절대로 끝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생사여부도 알려주지 않아 피해자들이 일일이 관련 기록을 찾아 발로 뛰었어요. 진상규명특별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진 한국정부에서도 모른다고 했고…제사도 한번 제대로 못 차려 드렸는데 후손들에게 어떻게 끝난 일입니까.” 이씨의 목소리는 절절했다.
그는 2001년 8월14일 아버지 이름을 위패에서 빼달라는 요청서를 들고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했던 날을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다. 정문을 지키고 있던 일본인들이 “더러운 조센징, 들어오지도 말라. 꼴도 보기 싫으니 물러가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
이씨는 그때 더욱 맘을 굳혔다. “야스쿠니 신사는 A급 전범 등 일본 군국주의의 혼이 모셔진 곳입니다. 일제 피해자인 아버지 넋을 그런 곳에서 쉬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신사측이 전몰자들의 개별명부(제신명부)에서 한국인들의 이름을 삭제할 것 같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이씨는 단호하다. “신사 안에 있는 위패(영새부)에 새겨진 아버지 이름이 완전히 지워지는 날까지 싸움을 계속할 겁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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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8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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