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케인스 경제학인가

왜 케인스 경제학인가

입력 2009-02-20 00:00
수정 2009-02-20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 존 메이너드 케인스 1·2권 】

전 세계 금융위기의 ‘메시아’로서 케인스가 부활하고 있다20세기 전반 제1·2차 세계대전과 대공항 속에서 수정자본주의를 내놓은 케인스는 최근 30~40년간 인플레이션의 주범, 공공분야의 확대로 인한 효율성 저하, 노동조합의 권력 팽창, 정부정책의 실패, 좌파 경제학자 등과 동일시되면서 조소와 경멸의 대상이었다.

이미지 확대
그런데 지금은 시장 친화력을 강조하는 관료는 물론 시장주의자· 신자유주의의 첨병이던 월가의 투자은행조차 케인스를 운운하고 있다. 어찌된 일인가.‘존 메이너드 케인스 1·2권’(로버트 스키델스키 지음, 고세훈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은 그같은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로 전 세계에 정부의 규제완화와 시장의 효율을 강조하던 밀턴 프리드먼류의 신자유주의가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선언으로 결정타를 맞고 타이타닉처럼 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워싱턴 컨센서스’가 유용하지 않게 됐다. 워싱턴 컨센서스란 1990년 전후로 경제위기를 겪는 남미와 개발도상국, 제3세계에 구조조정을 전제로 삼아 미국식 시장 경제체제(신자유주의)의 대외 확산 전략을 꾀하는 것. 미 행정부와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이 모여 있는 워싱턴에서 이뤄진 합의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것이다.

그렇다면, 케인스가 살아 있다면 현재의 금융위기 속 경제위기에서 어떤 처방을 내릴까. 그는 우선 정부가 경기부양책으로 유효소비를 증대시키려고 할 것이다.

잘 알려진 ‘소비가 미덕’인 셈이다. 구매력 있는 고소득층의 자금이 은행으로 몰려가지 않도록 이자율을 낮추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될 경우 낮은 이자에도 불구하고 자금이 기업의 투자로 흘러가지 않고 초단기 자금으로 시장을 떠도는 유동성의 함정에 갇힐 수도 있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 정책을 폄으로써 경기불황을 타개해나갈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케인스는 정부 정책으로 경제를 성공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고 봤을까? 아니다. 불확실성이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의 성과를 위축시키듯이 정부의 정책도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다만 케인스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하느냐 마느냐의 논란이 아니라 어떤 개입을 할 것이냐로 초점을 맞췄다. 후대의 경제학자들이 그 철학과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책에서 케인스는 결국 20세기 초반을 살아나가면서 자유주의자에서 정부 개입과 보호무역을 외치는 수정자본주의자로, 화폐수량설의 개량자에서 비판자로, 인플레이션에서 디플레이션 현상으로, 시장에서 국가로 관심사를 이동시켜나간 현실주의자의 모습으로 살아난다. 영국 재무부 관료로 1차 대전에서 패한 독일에 영국 등 승전국이 요구한 천문학적인 전쟁 배상금에 반대한 비범한 경제학자의 초상이 나온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케인스가 한국경제에는 뭐라고 조언할까. 저자인 스키델스키는 “대대적인 경제구조의 변화를 동반한 경제발전의 문제와는 사실상 큰 관련이 없으므로, 전후 한국 정부가 거시적 수요 창출뿐만 아니라 미시적 결정과 관련해서도 일일이 개입하는 경제발전 모델에서 케인스가 언급할 대목은 없을 것”이라면서 “다만 최근 한국 경제는 서방의 정책결정자와 언론의 갈채 속에서 곧바로 ‘워싱턴 컨센서스‘의 품으로 뛰어들었다가 금융위기에 노출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때문에 “케인스 사후 63년만에 마침내 케인스가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저자는 케인스의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이하 일반이론) 등 대표적인 이론을 사회·경제·정치적 맥락에서 분석함으로써 케인스가 추구했던 복지국가의 모델로서 경제적 해법을 밝히고, 현재적 상황에서 맹종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 케인스의 경제이론은 1·2차 세계대전과 그 사이에 발생한 대공항,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파시즘 대두 등 파괴적인 사회혼란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영국 워릭 대학 정치경제학과 교수인 저자는 원래 역사학자로 케인스 전기를 쓰면서 경제학을 공부해나간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에게는 교양 역사서처럼 보이고, 비경제학자에게는 경제학 서적처럼 보인다.

저자는 1970년초 출판사와 계약할 때는 케인스를 다룬 단행본을 낼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후 30여년이 지난 2000년에야 케인스 3부작으로 태어났다. 이 책을 읽고 감동한 번역자가 한국어 번역의사를 밝혔을 때, 저자는 3부작을 40% 줄인 1000쪽짜리 축약 단행본(2003년판)을 번역하라고 권고했단다. 단행본에 대한 저자의 애착 때문이다.

그러나 번역 과정에서 책은 1700쪽으로 늘어나 불가피하게 두 권으로 나누어졌다. 책을 쓰는 데 30년, 번역하는 데 4년이 걸렸다. 이 책이 집필되던 1970년대는 케인스는 용도 폐기되면서 신자유주의가 대두되던 시점이었고, 번역이 시작된 2004년은 신자유주의가 전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세상을 내다보는 혜안과 철학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1권 3만 5000원, 2권 3만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2009-02-20 18면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남북 2국가론’ 당신의 생각은?
임종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최근 ‘남북통일을 유보하고 2개 국가를 수용하자’는 내용의 ‘남북 2국가론’을 제안해 정치권과 학계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반헌법적 발상이다
논의할 필요가 있다
잘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