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교육청이 좌편향이라고 판단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교체하도록 고교 교장들에게 지나친 압력을 가하고 있다. 부산시교육청은 지난 14일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채택한 고교 49곳의 교장들만 따로 모아 해당 교과서를 다른 것으로 바꾸라고 압박했다고 한다. 이에 앞서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1일 일선고교 240여곳에 공문을 보내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재선정 계획과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했다. 울산교육청·충남교육청도 학교장 등을 상대로 연수를 열어 교과서 재선정을 강요했다고 들린다.
우리는 몇몇 교육청의 이같은 행태가 명백한 월권 행위임을 먼저 지적한다. 현재 일선학교에서 교과서를 선정하는 절차는 정해져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합격 결정을 내린 검정교과서를 담당교사·학부모 등으로 구성된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심의한 뒤 의견서를 학교장에게 제출하면 학교장이 채택하는 방식이다. 교과서 채택은 일선학교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업무일 뿐이지 교육청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나설 일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이런 행태는 검인정교과서 제도의 근간 자체를 흔드는 짓이기도 하다. 우리사회가 검인정교과서제를 채택한 이유는 사상의 자유를 일정부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즉 검인정을 통과한 교과서는, 그 내용·시각에서 다소 차이가 나더라도 교육현장에서 쓰기에 충분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부여받은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도 교육청 차원에서 특정 교과서를 지목해 채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검인정교과서 제도 자체를 부인하는 행위이다. 좌편향 교과서가 존재한다면 이를 수정토록 하는 것이 옳다. 그렇더라도 그 과정이 비민주적이면 용납될 수 없다. 그것이 민주사회의 원칙이다.
2008-11-2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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