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독설과 호통에 빠지다

TV, 독설과 호통에 빠지다

강아연 기자
입력 2008-10-27 00:00
수정 2008-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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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중문화계에서 독설·호통의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MBC 수목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가 인기를 얻으면서 주인공 강마에(김명민)의 까칠한 직설화법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것. 방송계에 독설·호통 개그 바람을 일으킨 김구라와 박명수에 대한 논란과 맞물려, 이같은 리더십이 지닌 미덕과 한계에 다시 한번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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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누구한테 좋은 사람이고 싶은 생각 없어. 하지만 속이는 건 더 나쁜 짓이라고 생각해. 니들은 실력이 없어!”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는 돌려말하는 법이 없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구제불능’‘똥덩어리’라 부르는가 하면,“거지근성을 버려라.”“천박하다.”는 폭력적 언사로 상처를 준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실제 상황이라면 못 견딜 법한 성마른 캐릭터임에도 “카리스마가 넘친다.” “강마에 같은 상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호응을 아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씨는 “민주적 리더십이 권리와 의무를 함께 부여한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차가운’ 리더십일 수 있다.”면서 “반면 독재적 리더십은 굴욕을 견디기만 하면 오히려 심신은 편할 수 있어, 이를 비난하면서도 은근히 갈구하는 이율배반적 욕구가 사람들 심리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독설·호통 붐을 일으킨 것은 사실 예능 프로그램이 먼저였다고 할 수 있다. 김구라, 박명수, 왕비호, 유세윤 등은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고 막말도 서슴지 않는 캐릭터로 묘한 카타르시스와 쾌감을 안겨줬다. 이런 화법은 가식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고, 문제점을 솔직하게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장점이 적지 않다.

하지만 박명수가 메인 MC를 맡았던 ‘지피지기’‘두뇌왕 아인슈타인’‘브레인 배틀’ 등이 방송된 지 얼마 안돼 폐지되고, 김구라가 진행을 맡은 ‘명랑히어로’‘라디오스타’‘일요일 일요일 밤에-세상을 바꾸는 퀴즈(세바퀴)’는 김구라의 존재감 과시가 식상함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한계점을 그대로 노출했다.

이와 관련, 여운혁 MBC 예능국 CP는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데는 상황과 포맷, 출연진간 호흡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면서 “인기나 시청률을 떠나 프로그램을 일관되게 끌어가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는 31일 첫 방송되는 SBS 신설 프로그램 ‘절친노트’(금 오후 10시55분)에서 김구라가 단독 MC를 맡은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절친노트’는 서로 관계가 불편한 스타나 잘 모르는 스타들이 등장해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 박승민 ‘절친노트’ PD는 “게스트와 함께 잘 어우러지는 것도 큰 리더십”이라며 “적나라하게 대놓고 독설을 늘어놓는 김구라만의 색깔이 ‘어색함을 깨고 친근한 관계를 맺어간다.’는 우리 프로그램의 성격에는 적격이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콘셉트에 따라 진행자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이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독설·호통의 리더십이 단순히 상대방을 윽박지르는 데 그친다면 다수의 공감을 얻기는 어렵다. 강마에가 단원들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으면서도 결국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위기 상황에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스스로를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극중 석란시장이 시향 단원들을 해고하려 하자 “날 대신 자르라.”고 맞서고, 거듭되는 강압에 “내 사람이다 싶은 단원들 15년 만에 만난 거다. 절대 포기 못한다.”고 단언하는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애정과 책임으로 똘똘 뭉친 진정한 리더십을 발견하게 된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2008-10-27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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