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엽기적인 그녀’ 쓴맛 보나

미국판 ‘엽기적인 그녀’ 쓴맛 보나

이은주 기자
입력 2008-10-25 00:00
수정 2008-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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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시각차 커… ‘마이 쎄시 걸’ 극장개봉 못해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미국판인 ‘마이 쎄시 걸’(원제 My Sassy Girl)의 국내 개봉(30일)을 놓고 한국영화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에 대한 논의가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2001년 곽재용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엽기적인 그녀’는 개봉 당시 488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인 ‘마이 쎄시 걸’은 미국 극장에서 개봉하지 못한 채 DVD로 발매되는 운명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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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이 쎄시 걸’
영화 ‘마이 쎄시 걸’
그렇다면 무엇이 이같은 결과를 가져온 것일까. 무엇보다 현지화 전략의 실패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장소는 뉴욕의 한복판인 소호거리, 브루클린 브리지, 센트럴파크 등으로 설정되고 남녀 주인공의 캐릭터 또한 모범생과 상류층 여성으로 변화를 줬지만, 에피소드는 거의 ‘엽기적인 그녀’와 변함이 없다.

강물의 깊이가 궁금하다며 다리위에서 남자친구를 떠밀거나, 여주인공의 피아노 음악회에 꽃을 들고 등장하는 장면도 같고, 조던이 수업중인 교수에게 “찰리가 남자로서 책임질 짓을 했다.”는 거짓말과 찰리가 조던의 새 남자친구에게 그녀의 10가지 매력을 줄줄이 읊어대는 대사도 똑같다.

하지만 아무리 원작의 흥행 코드에 충실하게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리메이크작을 보는 관객들이 이질감을 느낀다면 영화의 성공은 담보할 수 없다.‘엽기적인 그녀’는 당시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 파란을 일으켰던 여성 캐릭터와 사랑스러움과 섬뜩함을 왔다갔다한 여주인공 전지현의 매력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만큼 이같은 흥행요인에 대한 사회문화적 이해가 부족하다면 원작이 지닌 독특한 개성을 제대로 살릴 수 없다.

‘마이 쎄시 걸’의 프로듀서인 로이 리는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영화들은 원작 영화의 콘셉트와 줄거리를 쉽게 파악할 수 있고, 흥행이 검증돼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며 “그러나 미국에서는 ‘엽기걸’ 캐릭터가 흔할 뿐 아니라 현지에서 테스트 스크리닝 결과 여성 캐릭터에 대한 남성 관객들의 거부감이 생각보다 컸다.”고 양국의 문화적 시각 차이를 ‘마이 쎄시 걸‘의 부진 요인으로 꼽았다.

올초 충무로는 한국영화의 연이은 할리우드 판권 판매 소식에 한껏 고무된 분위기였다. ‘추격자’의 리메이크 판권이 100만달러에 팔렸고, 할리우드 톱스타 샤를리즈 테론이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의 제작과 주연을 맡았다. 하지만 한국영화 최초로 ‘시월애’를 리메이크한 ‘레이크 하우스’가 2006년 북미 지역에서 그럭저럭 선방한 것을 제외하곤 최근 ‘거울속으로’를 리메이크한 ‘미러’와 ‘마이 쎄시 걸’이 미국 시장에서 좋지 않은 성과를 거둔 것은 한국에서의 흥행이 곧바로 할리우드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한다. 요컨대 어느 나라보다 복잡다단한 한국 사회나 문화에 대한 이해없이 영화적 시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2008-10-2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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