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오버헤드킥] 철학적 원칙 있어야 아름다운 승리 가능

[정윤수의 오버헤드킥] 철학적 원칙 있어야 아름다운 승리 가능

입력 2008-07-17 00:00
수정 2008-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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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에 TV 스위치를 올렸다. 제법 긴 글을 써야 할 일이 있어서 밤과 새벽 사이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습관적으로 켰던 것이다.

케이블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광고를 아무 생각없이 물끄러미 쳐다보니 한 아파트 광고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세련된 차림의 여자 모델이 아이들과 함께 잔디 위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눈을 좀 더 크게 뜨고 주의해서 그 광고를 바라보았다. 화면 속에서 아이들은 구김살 없는 웃음을 터트리며 잔디밭을 뛰어다녔고, 근사하고 세련된 차림의 여주인공은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아이들과 함께 공을 찼다. 봄날의 벚꽃처럼 터지는 웃음과 맑은 하늘, 그리고 자유롭게 비상하는 둥근 축구공.

사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축구가 의미있는 소품으로 등장한 지는 꽤 오래됐다. 물론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의 영화 ‘지중해’처럼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축구에 열광하는 군인들 이야기나 아마추어 선수가 유럽 최고의 클럽 선수로 발전해 나가는, 자우메 골렛 세라 감독의 ‘골’이라는 영화도 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축구를 소재로 삼지 않았어도 축구공은 여러 영상에서 자주 볼 수 있다.

90년대 초반의 최고 인기 드라마 ‘모래시계’에서도 여러 사연 때문에 시골을 떠돌게 된 최민수와 고현정은 어느 작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공을 차고 논다. 세상 시름 다 잊고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동네 꼬마들과 공을 차는 그 순간만큼은 두 주인공이 천사의 땅에 사는 듯 느껴진다. 이 장면은 비록 주인공들의 사연을 좀더 애틋하게 치장하는 작은 도구에 지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축구와 축구공이 가지는 순백의 미학을 그대로 증명해 보였다.

물론 우리의 삶은 드라마와 광고처럼 달콤하지 않다. 그리고 축구 선수들 역시 화면 속의 주인공들처럼 아무런 강박관념 없이 공을 차는 것은 아니다. 어느 오락 프로그램의 유행어대로 ‘광고는 광고일 뿐 오해하지 말자’.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아름다운 경지를 외면하거나 포기할 일은 아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숨막히는 90분 동안 그와 같은 ‘딴 생각’을 해서도 곤란할 수 있다.

그러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의 명감독 아르센 벵거는 이렇게 말한다.“내가 추구하는 축구가 단 5분만이라도 실현되는 것을 보고 싶다.”. 바로 그런 철학적 원칙이 필요하다. 그래야 아름다운 승리도 가능하고 축구의 진정한 발전도 가능한 것이다.

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2008-07-1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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