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가요계의 권력 신드롬/이동순 영남대 국문과 교수·시인

[문화마당] 가요계의 권력 신드롬/이동순 영남대 국문과 교수·시인

입력 2008-05-08 00:00
수정 2008-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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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당 김정희란 이름은 그가 활동하던 당시 무명 서화가들에게는 반드시 넘어야 할,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넘지 못할 우뚝한 산이었다. 완당이 이룩한 예술세계의 독보성은 매우 탁월한 것이었으나 동시에 당대 예술의 다양한 발전과 변화를 가로막는 하나의 장벽이기도 했다. 신진 예술가들의 활동 무대에서 완당 같은 대예술가의 존재성은 분명 커다란 불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자연스러운 소통과 순환인데, 너무 크고 우뚝한 존재는 이러한 소통과 순환을 막아 버리는 현상을 가져 오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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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시인·영남대 국문학 교수
이동순 시인·영남대 국문학 교수
비록 경우는 다르다 하겠으나 최근 십여 년 안쪽에서 확인되는 가요계의 판도를 곰곰이 지켜 보면 지난날 완당이라는 존재성과 그 주변을 떠올릴 수 있다. 하나의 가요작품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작사, 작곡, 가창이라는 세 영역이 절묘한 일치와 조화를 이루어 비로소 절창이라는 놀라운 세계가 빚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자신의 세력을 키워온 가수가 작사, 작곡의 영역까지 모조리 장악하고 독점하여 오랜 세월이 경과하면서 일종의 지배구조를 형성하게 된다면, 이 때문에 많은 부작용들이 파생될 수 있다.

나라의 주권이 제국주의자들에게 침탈당했던 시대, 가요인들은 일본인이 주도하던 레코드 상업 자본에 의탁하여 다수의 작품을 써내었다. 그 무렵 가요계 인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순수 담백한 마음으로 합심 단결하고, 일치를 위해 노력함으로써 참으로 훌륭한 가요작품을 많이 만들어 내었다. 그 가운데서 현대 한국인들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랑과 애착으로 즐겨 부르는 뛰어난 명작들이 많은 것을 보면 당시 활동과 수준이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물론 그 시절에도 걸출한 감각과 재능을 지닌 몇몇 소수자에 의해 작사·작곡은 물론 가창 부문까지 함께 아우르는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것이 요즘처럼 돈벌이와 개인적 이권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니었다.

평생을 가요계에서 보낸 원로들과 더불어 작고 가요인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만나 밤이 이슥하도록 최근의 관심사를 나눈 적이 있다. 그들의 공통된 담론은 우리 가요계의 현실에 대한 깊은 우려와 탄식이었다. 모든 기회와 이익을 독점하고 있는 이른바 트로트계의‘빅 포’ 가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는데, 이들이 저지르는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로들의 호된 꾸중은 주로 기획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신진가수 끼워 팔기, 출연료 부풀리기, 이익을 함께 배분하는 세력들끼리 공생하며 편당, 사당을 이루는 현상 등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지배권력의 부조리한 구조와 그 병적인 신드롬을 흉내 내는 가수들이 가요계에 버티고 있는 한 신진가수들의 자연스러운 진출과 물갈이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고 단정했다.

이른바 권력형 가수들의 최근 동향을 유심히 지켜 보면 무대, 방송, 광고 등 모든 출연 기회를 오로지 그들만이 독점할 뿐만 아니라, 대중 앞에 나와서도 방자하고 교만하며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을 쉽게 드러낸다. 가수는 무대 위에서 자신의 사활을 걸어야 한다. 그들의 노래를 듣고 삶의 위안과 작은 변화를 기대하는 가요팬들을 위해 그야말로 전력투구하는 헌신적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은 기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형 가수들의 경우 이미 신선한 느낌이 현저히 소멸된 낡은 노래들만 반복해서 부르거나 천박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와 더불어 자신이 설립한 기획사를 통하여 모든 이익을 자신들에게 집중되도록 하는 교묘한 장치를 만들었다.

왜 우리는 미국이나 유럽, 러시아, 라틴아메리카, 혹은 일본처럼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대중의 가슴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전설적인 가수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가. 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진정한 가수, 기품 있는 가수를 만날 수 있을까.

이동순 영남대 국문과 교수·시인
2008-05-0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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