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토종] (5) 긴꼬리닭

[한국의 토종] (5) 긴꼬리닭

도준석 기자
입력 2008-04-30 00:00
수정 2008-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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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길이 무려 1m… 천연기념물 지정예고

지구상의 조류 중에서 인류가 가장 먼저 길러온 가금류인 닭. 동틀 무렵 지붕 위에 올라가 길고 우렁찬 목청으로 어김없이 자명종 역할을 해주던 닭울음 소리를 요즘엔 시골에서조차 좀처럼 듣기가 힘들다.

“부모님 세대만 해도 시골 장날이면 볏짚으로 만든 달걀 꾸러미와 씨암탉을 팔아 손주들에게 까만 고무신도 사주고 고등어자반도 사 먹였지요.” 대학에서 축산을 전공한 이희훈(59)씨는 외래종에 밀린 토종닭들이 시골풍경에서 자꾸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30년 전부터 경기도 고양에서 토종닭 복원에 몰두해 오고 있다. 순종 교배를 통한 토종 ‘긴꼬리닭´의 육종을 연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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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훈씨가 육종중인 긴꼬리닭 한 마리가 홰에 앉아 자태를 뽐내고 있다(큰 사진). 긴꼬리닭의 꼬리는 90cm에 이른다. 가을이 되면 1m가 넘으며 털갈이를 한다(작은 사진).
이희훈씨가 육종중인 긴꼬리닭 한 마리가 홰에 앉아 자태를 뽐내고 있다(큰 사진). 긴꼬리닭의 꼬리는 90cm에 이른다. 가을이 되면 1m가 넘으며 털갈이를 한다(작은 사진).
고양서 순종교배 통해 330여마리 복원

한국의 토종닭을 대표하는 긴꼬리닭은 안면은 붉은색을 띠며 부리는 갈색, 또는 황색이다. 체구는 긴 편으로 목 깃털이 풍부하다. 특히 수탉은 꼬리의 깃털이 잘 발달해 매년 가을철이면 1m 정도까지 자란 후 털갈이를 한다. 홰에 올라앉아 윤기 있는 검은색의 꼬리를 길게 내려뜨린 자태는 사뭇 위엄스럽기까지 하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등의 고문헌에 ‘한반도에 꼬리가 긴 닭이 있다(韓傳 出細美鷄 其美皆五尺餘).´는 기록이 있다. 전통무용의 복장에서도 긴꼬리닭을 형상화한 옷차림으로 춤을 추는 등 우리가 사는 땅에 긴꼬리를 가진 닭이 존재했었다는 자료는 많다.

계육과 달걀에 대한 수요가 늘고 공장형 양계가 발달하면서 토종닭을 기르는 농가는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서구에서 들여온 개량종 닭에 토종닭들이 밀리면서 긴꼬리닭은 아예 자취를 감춘 것으로 추정된다. 다행히 토종닭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이희훈씨가 긴꼬리닭 330여마리를 복원했으며,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예고 중이다.

“日 긴꼬리닭이라는 주장 터무니 없어”

이씨가 복원한 긴꼬리닭이 토종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지난 2006년 7월 한 조류연구단체가 고양의 긴꼬리닭이 일본 긴꼬리닭의 사육종이라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긴꼬리닭(長尾鷄·Onagatori)이 고치현을 중심으로 천연기념물로 사육되고 있으나 기원에 관해서는 한반도유래설, 야계교잡설 등으로 엇갈리고 있다.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의 조창연(48) 박사는 이러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고양 긴꼬리닭이 외래종보다 우리나라 재래닭과 계통분류학적으로 더 가깝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조 박사는 “긴꼬리닭의 상염색체유전자, 모계유전자의 DNA 분석결과 우리나라 토종닭과 매우 가깝고 일본 닭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나타났다.”며 긴꼬리닭이 우리 고유의 토종임을 입증했다. 특히 긴꼬리닭의 모계계통이 확실하며 적어도 2개 이상의 계통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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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일산동구 풍동농장에서 30년 동안 긴꼬리닭을 육종하고 있는 이희훈씨. 이씨는 갓 부화한 병아리만 보고도 꼬리의 길이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고양시 일산동구 풍동농장에서 30년 동안 긴꼬리닭을 육종하고 있는 이희훈씨. 이씨는 갓 부화한 병아리만 보고도 꼬리의 길이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2007년 일본 전문가들의 현장조사도 있었다. 축산과학원 주최의 ‘한국과 일본의 긴꼬리닭 비교 발표 심포지엄´에 참석한 일본 히로시마대학 스즈키 교수 일행이 고양의 이씨 농장을 방문했다. 스즈키 교수는 방문조사 이후 “한국의 긴꼬리닭은 일본의 긴꼬리닭인 장미계(長尾鷄)와 비교해 체형이 중후하고 벼슬도 크다. 특히 귀뿌리색 및 정강이색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내용의 서신을 조 박사에게 보내 왔다.

이씨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장미계를 가져 왔다는 일본 문헌의 기록도 있다.”며 긴꼬리닭이 일본의 고유 품종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그릇된 역사관의 잘못을 지적했다. 이씨는 이어 “대다수 일본인들이 고양의 긴꼬리닭을 직접 와서 보고 차이점을 확인해 보지도 않은 채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만 보고 고양의 긴꼬리닭과 현재 일본의 긴꼬리닭이 같다고 주장한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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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풍동농장에서 알을 품고 있는 긴꼬리닭 암컷. 알은 산란 후 21일 정도 품으면 부화한다. (3) 전북 남원시 운봉읍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 가축유전자원시험장 유전자보관실에서 초저온 냉동고에 보관중인 긴꼬리닭의 DNA와 혈액시료. 천재지변이나 전염병 발생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보관중이다. (4) 가축유전자원시험장에서 조창연 박사가 긴꼬리닭의 혈액에서 DNA를 추출하기 위해 DNA 추출기에 시약을 분주하고 있다.
(2) 풍동농장에서 알을 품고 있는 긴꼬리닭 암컷. 알은 산란 후 21일 정도 품으면 부화한다. (3) 전북 남원시 운봉읍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 가축유전자원시험장 유전자보관실에서 초저온 냉동고에 보관중인 긴꼬리닭의 DNA와 혈액시료. 천재지변이나 전염병 발생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보관중이다. (4) 가축유전자원시험장에서 조창연 박사가 긴꼬리닭의 혈액에서 DNA를 추출하기 위해 DNA 추출기에 시약을 분주하고 있다.
이씨는 최근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AI)의 확산에 대비해 긴꼬리닭을 별도의 장소에서 특별관리하고 있다.“아직까지 긴꼬리닭을 한 마리도 외부에 분양하지 않고 있습니다. 긴꼬리닭이 개인의 수익사업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자원´이기 때문입니다.”

조 박사는 “우리만의 토종 유전자원을 확보하고, 토종 종자의 주권을 지켜 나갈 때 우리의 생명산업도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토종 긴꼬리닭과 같은 멸종위기에 처한 고유의 토종 동식물을 모니터링해 우수한 유전자원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관리하고 개량해 나가야 할 때”라며 토종자원 보존사업의 중요성과 당위성을 거듭 역설했다.

글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2008-04-3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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