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쿠바 그리고 문화외교/배재현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

[기고] 쿠바 그리고 문화외교/배재현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

입력 2008-04-14 00:00
수정 2008-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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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 질 무렵, 쿠바의 수도 아바나 골목길에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100여명의 군중이 음악소리에 맞춰 춤을 추며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이유도 없다. 그냥 음악소리를 좇으며 살사의 몸짓으로 춤을 추며 행렬을 이룬다. 마치 하멜론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뒤따르는 아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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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현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
배재현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
우리에게는 체 게바라, 혁명, 미국의 경제봉쇄, 피델 카스트로, 미사일 위기 등으로 알려진 쿠바에 가서 겪은 문화충격이다. 충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거리와 건물 곳곳에 배어 있는 문화유산의 향기, 일반 사람들 곁에 있는 문화적 소양. 이것이 진정한 문화강국의 모습이 아닐까?

쿠바. 멀리 떨어진 캐리비안 지역의 섬나라, 또한 우리와는 공식 관계도 없는 미수교국. 얼핏 보면 우리에게 별 관계없는 나라 같지만, 쿠바인들의 마음에는 나름대로 우리의 존재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중국 다음으로 쿠바와 교역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베트남, 일본보다 많다. 쿠바를 찾는 우리 관광객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현대중공업은 이동식 발전기 수주를 통해 쿠바 국책산업인 에너지 혁명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작년에는 쿠바 국가예술·영화산업위원회(ICAIC) 주관으로 아바나에서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 등 한국영화제를 열어 많은 호평을 받았다.

아울러,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 로스 반반(Los Van Van) 밴드 등 쿠바의 대표적 음악가들의 방한 공연, 영화 ‘저개발의 기억’ 부산영화제 상영 등 문화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외교 담당자로서는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난달 말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하였다. 양국간 이뤄지고 있는 문화교류를 보다 제도화하고자 함이었다. 나아가 정식수교를 위한 환경 조성을 희망하면서 쿠바행 비행기에 올랐다.

문화는 모든 것을 초월한다. 서로간 소통을 저해하는 상이한 언어, 정치체제, 지리적 원격성 등은 문화를 통해 사라지고, 우리는 서로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문화외교가 주목받는 이유이다. 뉴욕 필하모닉 평양 공연, 미·중 핑퐁 외교 등 미수교국간 문화교류 행사는 세계 주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넘어, 양국 국민간 소통과 관계개선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울러, 문화는 치유제 역할도 한다. 타자의 문화를 수용하는 모습은 문화 다양성을 이해하는 우리의 관용을 보여주며, 또한 타자 스스로 자기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높이게 된다. 자원외교 및 경제외교가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문화를 통해 보완·강화할 수 있다.

이번 쿠바 방문은 그간 일회성으로 그쳤던 문화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거나 제도화하는 방안을 협의하였다. 또한, 양국간 쌍방향 문화교류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내년도 외교통상부가 개최할 중남미지역 문화축전에 쿠바 공연단 초청과 우리 공연단의 쿠바 방문, 그리고 쿠바 문화전문가 방한 초청, 쿠바 대학생의 한국 유학을 비롯해 양국 국민간 교류증진 문제를 논의하였다.

쿠바측도 우리측 문화외교 대표단 방문을 의미있게 받아들였다. 외교부 한반도 담당 과장이 모든 공식·비공식 일정을 수행하는 등 특별한 관심을 보이며, 다양한 분야의 인사를 만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하였다. 쿠바측의 환대는 자기 문화에 대한 자부심의 발로며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에서 나왔을 것이다.

봄날의 황사와 같이 불분명한 양국 관계에도 불구, 확실한 것은 양국간 문화교류는 진전해 나갈 것이며, 나아가 활발한 문화교류가 봄비와 같이 양국관계의 황사를 일소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문화는 이념, 정치 체제를 초월하고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를 맺어 주기 때문이다.

배재현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
2008-04-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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